미국을 위수로 하는 19개 참전인원 조각상과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인 저자 기념사진.6. 산중 무릉도원의 인정 부상을 입은 네번째 날, 나는 큰길에서 약 16Km 떨어져 있는 큰산에 들어섰다. 나로 말할 때 큰산은 비교적 안전한 곳이였다. 그곳에서 미군을 만날 근심이 없고, 미군은 일반적으로 평원과 큰길로 다녔다. 때는 늦가을이여서 산의...
5. 산골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이날 나는 약 3Km를 기어 작은 산언덕을 넘었다. 작은 산 뒤에는 큰 산이 있었고 먼곳을 바라보던 나는 밤에 찾아든 산에 불빛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산기슭 불빛이 있는 곳에 꼭 사람이 거주할 것이라 판단하고 온 힘을 내어 불빛을 바라고 기어갔다. 가까이까지 기어 갔을 때 나는 산속 독집을 발견하였다. 나는 곧 집안...
조선 해주에서(1950.084. 위 차안부대의 수색을 피하다. 순천교 북쪽의 첫 마을에는 원래 20여 호가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촌 조선노동당기층조직 위원장(중국의 지부서기에 해당 함)이 남아서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두 전사의 부추김을 받으며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기뻐하면서도 근심이 앞섰다. 위원장에 따르면 마을의...
1957년 청화대학교을 졸업한 저자.3. 순천포위돌파의 여러가지 의론이번 순천포위돌파전에 대한 문헌 기재는 매우 기이하다. 대체로 중국인은 몰랐고, 미국인은 담론하지 않고, 조선인은 담론을 회피하고, 한국인은 불실하다고 개괄할 수 있다. 1、중국인은 몰랐다. 이번 포위돌파전은 지원군이 입조 전에 발생하였기에 지원군 중에는 전투 참가자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