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账号登录: 注册 登录

7.  우리노래 지킴이 황상박 선생을 만나다.

우리노래 지킴이 황상박 선생을 만나다

黄相博1.jpg


“노래가 없는 민족은 소실되기 마련이다. 우리 노래, 우리 언어, 우리 문자의 발전을 지키련다.”했으며 노래가 인생의 전부라고 말씀하시는해란강여울소리 창시자이자 총편집,평생을 우리노래 창작과 보급에 이바지해 황상박선생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룡정작가협회에서 주관하고 황상박 선생이 총편집을 맡은 "해란강 여울소리" 월간형식으로 꾸며진 정식 간행물이다. 1996 4, 고고성을 울린 "해란강 여울소리" 장장 20년동안 어김없이 발행을 이어오면서 초기의 수십부에서 현재는 무려 500부의 발행량을 자랑하는 명성을 갖춘 간행물로 성장했으며 북경, 상해, 광주, 청도 중국 각지는 물론 한국, 조선, 일본, 카나다, 브라질, 미국, 우즈베키스탄 7개국까지그 영향력을 과시하고있다.


나는야 배달원


황상박선생은 20살때부터 룡정시우편배달원으로 일하셨다. 젊은날 황상박선생은 , 우편배달원 기준병으로 활약하였으며 연변주 당위서기 주덕해 친필상장, 연변주로동모범, 전국로동모범의 칭호도 받아안았다. 1965, 28살나던해 황상박선생은 전국아마추어 문학청년창작적극분자로 선정되여 북경인민대회당에서 표창장을 받아안은 날을 잊을수없다고 하셨다. 이날 황선생님은 대표로 선정되여 발언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해란강 여울소리" 탄생비화


1980,우편배달원이던 황상박선생님은 룡정시 방송국으로 전근가게 되였다. 룡정시방송국 문예부로 출근하여서부터 황선생님은 노래와 더욱 가까워졌다. 황상박 선생은 문득 어느날 우리말로된 노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우리말 가사가 많이 창작되면 따라서 멋드러진 노래들도 많이 탄생될게 뻔한 , 따라서 가장 기초적인 가사모으기 방법을 모색하던중, 신문지면을 통한 가사모집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생각이 무르익자발빠르게 행동개시에 나선 황상박선생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본인의 쌈지돈을 탈탈 털고 심지어 소장해두었던 대량의 서적들까지 아낌없이 팔아 신문출판 비용을 마련, 모든심혈을 신문출판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힘들게 스타트를 우리말 가사지, 연변 조선족을 의미하는해란강 대중의 목소리를 의미하는여울소리 본따 "해란강 여울소리" 명명하고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다.

초기에는 주변에서 글쓰기와 노래말 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들에게 일일이가사를 청탁하면서 힘들게 하나, 원고를 수집해갔고 흔한 사무실 한칸도 없이 해란강 강뚝에 나홀로앉아 작품편집에 달라붙었다. 일일이 편집하고 일일이 판면디자인까지 하고 일일이 힘들게 손인쇄까지 하며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신문이 출간되면 신문에 게재된 작사가들과 작곡가들에게 일일이 배달까지 도맡아 한다. 신문을 받아들고 감격을 금치 못하던 작사가들과 우리 가사지를 받아들고 흥분해마지 않던 작곡가들, 그들의 기쁨과 감격이 20여년간 황상박 선생에게 크나큰 에너지를 부여해주었단다. 가사지에 발표된 가사는 수많은 작곡가들의 손으로 전달됐고 우리 민족 정취가 고스란히 슴배인 수십, 수백, 수천개의 우리 노래로 재탄생됐다. 그렇게 힘든 스타트를 떼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여다니며 구슬땀을 흘린 결과 20여년이라는 세월이 고스란히 "해란강 여울소리" 드높은 인지도로 차곡차곡 쌓여갔고 현재는 가만히 앉아서도 매일 매일 넘쳐나게 투고되는 가사들 때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신다.

"해란강 여울소리" 통해 탄생된 노래들중 왕청의 평범한 녀성이 가사어머님의 눈물 황상룡 선생의 멜로디와 어울리며 전국 대중가요콩클서 1등상을 수상, 뿐만아니라 "해란강 여울소리" 실린 30여수의 노래들이 아름다운 선률을 만나 각종 대회에서우수한 성적을 받아안았다.

국가1급음악가, 저명한 작곡가 림성호 선생도 "해란강 여울소리" 발표된 가사에 멋드러진 곡을 붙여 발표, “소녀의 순정 비롯해 수만도 300여수에 달한다.


후비력량 양성이 시급


비록 20여년의 시간동안 "해란강 여울소리" 우리 가요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며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쌓여가는 인기와,한해한해 눈에 띄이게 기력이 떨어짐을 느낄때면 정작 서글픔을 감출수가 없단다. 우리 가요계에큰 공훈을 기록한 수많은 음악인들의 타계와 점점 고갈돼가는 후비력량들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터. 한류와팝송에 물들어버린 젊은이들은 아예 우리 노래들을 냉정하게 외면해버렸다. 그러하다 보니 우리 노래의가사들에 새로운 발전이 없고 변변하게 계승마저 안되는 상황이란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황상박 선생, 앞으로 10, 20년후의미래가 심히 걱정이란다.


안타까운 현실을 조성하게 된건 한류의 열풍도 장본인이 될터이지만 더욱이는우리 가요의 발표에 오롯이 작사,작곡가들이 개인돈을 들여 발표해야 하는부담감 걸림돌이되였단다. 이한 국면이 시급히 개변돼야만이 기성 음악인들의 창작열의가 다시금 불타오를것이며 새로운 창작인들의적극정도 불러일으킬수 있을것, 정부적 차원의 지원에 약간의 희망을 기대하신단다.


후비력량 양성에 많은 연구를 기울였다는 황상박 선생, "해란강 여울소리"지면에 어린이 시조란을 증설할 예정이란다. 매기에 15 정도의 학생작품과 교원작품들을 게재, 교육부와 토론해 "해란강여울소리" 신문을 학교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 학생들과 교원들의 창작열의를 최고조로 불러일으켜 후비력량양성에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있다.

조선어문자의 설립과 동시에 작사자와 작곡가들을 위한 작은보상을시작한 "해란강 여울소리" 연변가사협회와 손잡고 가사응모 우수작품을 선정하여 수상자들에게 상금과 증서를 발급하면서 기성작가들의 적극성을 자극하고있다.


조선어문자의날 가사응모 시상식은 오직 우리글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사창작을 위해 일해온 각지에서 작사자들의 잔치이기도 하다. 해마다 편집부에 투고된 300여수의 가사중 우수작품을 선정하여 상장과상품을 발급하며 작사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있다.

세상 다할때까지 우리 노래와 함께 하는것이 소망이라는 황상박 선생, 우리 노래 발전에 이바지한 그의 로고만큼 더욱더 빛나는 "해란강 여울소리" 미래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김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