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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악기 제작에 혼신을 바쳐  - 성급 조선족전통악기 제작 전승인 조기덕


민족악기제작에혼신을바쳐

- 성급조선족전통악기제작전승인조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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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절전야인지난 9월 29일, 기자는 성급 조선족전통악기제작전승인 조기덕소장을 만나러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를 찾아갔다. 연길시 동쪽시교인 북산가 애단로 126-2번지에 자리잡은 민족악기연구소 건물에는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전승단위”라는 커다란 글자가 멀리에서도 눈에 확 뜨이게 안겨왔다.

조기덕소장은간소한사무실에서기자를맞이하였다. 사무실 한켠에는 장고, 가야금,  등 여러가지 악기견본이 놓여있었고 벽에는 우리가 가무단, 예술단의 공연무대에서와 텔레비죤연예프로에서 자주 보아온 다양한 조선민족전통악기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조기덕소장은 먼저 연구소카다록을 보여주면서 기자에게 우리민족의 여러가지 전통악기들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하였다.

“우리의 민족악기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야금은 《삼국사기》권 32 ‘악지’편과 《신라고기》에 수록되여 있는것으로 보아 이미 수천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이며 기원 6세기경, 신라 24대 진흥황이 ‘가야에서 건너온 우륵을 국원성에 정착시키고, 계고와 법지, 만덕 등 3인을 보내 그에게서 음악을 배우게 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미 궁정에서도 많이 연주된 것으로 보입니다. 퉁소도 고려시기 궁정음악에 쓰이였으며 민간에도 널리 류행되여 훌륭한 악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장고, 해금, 아쟁, 새납, 피리 등 기타 전통악기들도 모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자가우리민족전통악기의특점에대하여묻자조기덕소장은이렇게설명하였다. “우리 민족의 전통악기는 방금 드린 말씀처럼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으며 악기마다 구조가 독특하고 음색이 부르럽고 절주가 풍부한것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이런 악기들은 무용의 반주와 기악합주에도 모두 사용되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훌륭한 악기들이 대부분 원래의 옛스럽고 우아한 외형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전해 내려왔다는 점입니다. 원래의 모양과 소리를 그대로 전해왔다는 것은 매우 큰 예술적가치를 지니는것이지요.”


조기덕소장의얼굴에는민족의전통악기에대한애정이듬뿍넘쳐났다.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현재 무대표현과 각종 연주에 많이 우리 조선민족전통악기로는 약 30종이 있습니다.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로 해금, 아쟁 등이 있고 죽관악기로는 퉁소, 횡적, 단소 등이 있고 동관악기로 새납 등이 있으며 타악기로는 장고를 비롯해 룡고, 농고, 편고, 법고 등이 있습니다. 우리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는 2008년 국무원으로부터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보호단위로 지정받고 2014년에는 국가문화부로부터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생산성보호시범기지”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현재 민족전통악기에 대한 연구와 제작 및 공급이 일체화된 체계를 갖추고 일련의 생산성보호조치를 취하여 민족전통악기제작기술을 전승하고 있습니다.”


기자가연구소가이뤄낸업적에대하여묻자조기덕소장은이렇게대답하였다. “예전엔 우리의 민족전통악기가 주내외 몇곳의 예술단체와 학교 등에 공급되였지만 현재는 북경, 상해 등 전국각지는 물론 한국 등 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우리는 국가 문화부 등 여러 부문의 요청으로 비물질문화유산전시활동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의 여러 행사에도 민족전통악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08년 북격올림픽개막식공연에 장고등 수백건의 악기를 제공했고 2010년 상해엑스포 중국관에도 10종의 조선민족전통악기를 제공하여 전시하게 하였습니다. 이외 자치주창립 60돌기념 광장무용에 5000여건의 악기와 도구를 제공하고 왕청의 1000명 상모춤, 도문의 1000명 장고춤, 연길의 800명 아박춤 그리고 룡정에서 있은 기니스세계기록돌파를 위한 1000명 가야금표현 등에도 모두 우리의 악기가 제공되였습니다.”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를이끌고있는조기덕소장은민족악기와의인연이매우깊은사람이다. 그는 일찍 1958년 연변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의 악대에서 연주원으로 활약했으며 2학년부터는 음악반에 와서 계통적이고 전면적으로 음악리론과 악기연주지식을 전수받았다. 1985년부터 조선민족악기제작에 입문한 그는 국가급조선민족악기제작전승인 김계봉선생과 악기제작에 조예가 깊은 문태봉선생을 모시고 민족악기제작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1988년 연길시조선족악기공장 공장장에 임명된 그는 조선민족전통악기제작에 혼신을 다바쳤다. 그는 민족전통악기를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으며 민간예인들을 방문하고 흩어진 민간전통악기를 발굴하여 30여종의 민간전통악기제작방법을 장악하였으며 그것을 복잡한 생산공정에 직접 활용하게 하였다. 조기덕소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동나무장고를 개발하는 등 성과를 올렸으며 가야금, 장고, 퉁소, 해금 등 민족전통학기제작 계승자들을 수많이 배양하였다.


또한최근년간전주각지에서탈춤, 농악무 등 대중성민간무용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상모, 물동이(무용소품) 및 탈과 같은 민간예술표현도구의 수요량이 늘고있는 상황에 비추어 다양한 관련제품들도 생산하였다.

탈의제작에대해조기덕소장은이렇게소개하였다. “우리 주에서는 지난 세기 50년대부터 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축활동이나 무대공연에서 탈춤이 빠짐없이 등장했는데 탈춤에 수요되는 탈은 자체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1999년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가 설립되면서 탈제작은 기업화생산에 들어섰지만 수량이 제한돼있고 품종도 적었습니다. 2005년부터 국가 무형문화재보호관련 각종 정책이 출범되면서 탈춤은 연변 각지에서 흥기됐고 우리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의 탈제작량도 매년 200개로 늘었습니다. 탈춤도 형식이 많이 나오고 농악에서 탈춤도 결합하는 형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여 탈수요가 많아지고 자연히 사회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악기를 생산하는 한편 탈 생산도 겸해서 하게 됐습니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탈은 우습강스럽고 과장되여 표현되는 것이 특점이고 탈의 형상에는 남녀로서가 다 있는데 웃고 성내는 등 표정이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탈재료는 종이나 인공비닐입니다. 무형문화재보호가 심화되면서 현재 탈은 단순한 무용도구가 아닌 전통민간공예로 거듭나고있습니다. ”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에서는또한관광산업이급성장하면서관광기념품으로인기를끌고있는시장의요구에따라장구, 북 등 전통악기공예품 수만개를 제작해 국내외에 판매했다. 전국회의나 성 또는 주에서 개최하는 국제회의에서 주최측인 정부기관나 기업에서 특색 있는 기념품을 손님들에게 선물하려고 악기 공예품을 수백개씩 주문하기때문이다.

기자와마주앉아취재를접수하는얼마안되는사이에도조기덕소장의전화기는자주울렸다.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전승단위”인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 소장으로서 또한 성급 조선족전통악기제작 전승인으로서 그가 직접 처리해야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기때문이다. 기자는 아쉽지만 수첩을 덮었다. 조기덕소장의 손을 굳게 잡고 더욱 훌륭한 성취를 적어낼 다음번 취재를 약속하였다.

해란강닷콤특약기자/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