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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연정’, 부채결에 너울진 한 안무가의 삶


아리랑연정, 부채결에 너울진 한 안무가의 삶

-연변가무단 창작실 부주임, 국가1급 안무가 김희 씨의 이야기


金姬舞蹈.jpg



무용은인간이몸으로표현할있는가장아름다운언어이고, 감정이고, 소통의 몸짓이다.

일전, 길림성 대표로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 참가해 수도 북경의 밤을 뜨거운 민족애로 들끓게 했던 대형무극 아리랑꽃, 연변의 여름은 아리랑꽃열기로전례없는끈끈한민족애를과시하며무서운인기를누렸다.  그리고 그 인기의 배후에 바로 그녀가 있었다. 국가1급 안무가이며, 연변가무단 창작실 부주임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 부채춤 제6(?) 전승인 김희 씨, 신근한 땜냄새가 물씬 풍기는 무용연습실에서 드디어 그녀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전승인은그대로우리민족의문화적전통을전승해야하는사람입니다. 우리 민족전통무용의 원형태를 잃지 않는 전제하에서 더 화려하고, 더 체계적인 우리 민족 부채춤의 전승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김희씨가필자에게건넨마디이다.

무극 "아리랑꽃"의 한장면

부채춤-나무 이파리로 시작된 예술의 혼

원시사회에서나무이파리를흔들며타던리듬과률동이, 훗날에는 무당들의 대표적인 살풀이 형식에 쓰이다가, 더 훗날에는 “무당춤”이라는 색다른 쟝르의 무용예술로 승화되였고, 사당패 외줄타기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면서부터는 접었다, 폈다, 위로 돌리고, 아래로 돌리는 등등 다양하면서도 단조로운 동작으로 발전된 부채춤, 최초 “무당춤”의 창시자인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에 의해 고품격 예술로 승화되면서 정식 무대예술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한국과 조선을 넘나들며 수많은 후배들에 의해 전수되고 전파되는 등 거침없는 발전과 성장세를 거듭한 끝에, 오늘날에는 보다 다채롭고 격정넘치는 군무형식의 무용으로까지 성장했다.

무극 “아리랑꽃”에서도 부채는 배우들의 률동을 돋보이게 하는 단순 도구를 넘어선, 극 전반 흐름에 녹아들어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발휘했다. 빨간색 부채로 불타는 태양과 정열을 표연했고, 요동치는 생명의 피줄을 상징하는 붉은 흐름으로 부채춤의 또다른 감동을 담아내기도 했다.

같은부채? 다른 느낌!

이쯤에서생기는궁금증하나. 부채춤은 조선민족 뿐만아니라, 소수민족 무용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부채춤만의 매력과 차별화는 뭘가?

역동적이고, 단순히 리듬 타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여타 민족의 부채춤에 비해 조선족 전통 부채춤은 무용인과 호흡이 일맥상통하며 미세한 떨림 하나, 손목 움직임의 변화에 깊은 내음을 표출하는 등 세부적인 움직임으로 특징인물과 내용의 사상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할수 있는게 특징이란다.

"천년아리랑"-"서혼"의 한장면

부채-남자무용수의 손끝서 다시 태여나다

부채춤은무용계의 “황후”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력이 있다. 따라서 모든 안무가들이 즐겨 다루는,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쟝르이다. 그런 보편화된 부채춤 령역에서 남다른 사상을 부여하며 부채춤의 전승인으로 등록된 그녀다.

2006년쯤 이였단다. 여성 무용수들이 보편적으로 그려내던 꽃물결과는 달리 남성 무용가들만의 유연한듯하면서도 박력넘치는 형상으로 색다른 부채춤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녀, 고심끝에 부채살을 접으면 “붓”으로 변신해 우아한 한복차림으로 무대위에 획을 그으며 경건함을 표연하다가도, 부채살을 쫙 펼치면 다시 “책”으로 변신해 근엄한 자태로 독서의 정석을 보여주는 선비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담아내며 전문가들과 관객들의 한결같은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번 남성 부채춤 안무를 계기로 김희는 부채춤 령역에서 범접할수 없는 기발한 안무능력을 인정받으며 성급 부채춤 전승인으로 이름을 올릴수 있었다.

천년아리랑-"서혼"

무대위에서꽃피는 인내의 참맛

고단함과화려함이공존하는무용수로서의, 후회나 유감이 없는지 물었다.

“힘든적은 많지만 후회한적은 결코 없어요. 힘든 과정을 겪어봐야만이 그에 따르는 성취감의 무게를 알수 있거든요. 힘든만큼의 보람에 자부하는 편이죠”

그랬다. 그녀의 말처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터. “아리랑꽃” 90분동안의 공연을 위해서 그녀를 포함한 모든 스탭들이 견뎌야 했던 준비기간만 무려 2년이 넘을 정도였다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무대위에서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박수갈채를 이끌어내는 순간이면 그 벅찬 감동과 짜릿한 성취감에 젖어, 모든 아픔과 고단함을 한꺼번에 털어낼수 있었다는 그녀다. 무대에 대한 애정만 더욱더"작은 거인"이 꿈꾸는 "작은 소망" 하나

배우로서무대위에서화려한스포트라인을받던그녀가요즘은무대위가아닌무대뒤에서, 배우가 아닌 안무가로서 여전히 빛나는 삶을 그려가고 있다. 배우시절의 힘든 고충을 너무나도 잘 리해하는 그녀이기에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모든 배우들을 품어주고 보듬어 주고싶지만 어쩔수 없이 지휘자의 신분으로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순간순간들이 고역일터…

그런그녀가요즘들어나름스케일이 “소박한” 념원을 가슴에 품고 있단다. “천인상모”와 “천인장고”에 이어 “천인부채춤” 기네스기록에 도전하고 싶다는 작은 소원 하나…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질지 가늠할수는 없지만 나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라고…  

일상이무용이였고, 무대가 삶이였다는 김희씨, 춤추는 부채끝에 그려지는 아련한 곡선마냥, 전통무용을 고수하고 전수하는 한길에서 그녀의 미래가 곱디고운 부채결마냥 만방하길 기대해본다.

◆김희 프로필중국길림성연변가무단창작실부주임, 국가 1급 안무가 석사

중국무용가협회회원,연변무용가협회 부주석

연변조선족자치주정치협상위원회상무위원          

연변대학예술학원무용학부초빙교수

대표작

1999년 –녀자군무 “한삼춤”

2000년-남녀군무 “장백의 메아리”

2001년-4인무용 “하얗게 부셔지는 영혼” 한국민족춤제전

2004년-녀자군무 “길을 여는 소리” 한국예술종합학교석사과정 졸업작품

2006년-무용시 “천년아리랑” 중 남자군무 “부채춤”, 남녀군무 “북춤”

2007년-남자군무 “서혼”

2009년-남자군무 “얼씨구”, “비상

2010년-녀자군무 “방치춤”, 남자군무 수정본 “얼씨구”

2012년-녀자군무 “장고춤”

2015년-무극 “아리랑꽃”

수상경력

◐ 1997년 중국 조선족 무용시 “장백의 정” 무용지도담당 중국 제2회 무극콩클 우수연극상, 제8회 중국문화부 문화 연극상, 제6회 길림성 장백산 문예상,

◐ 2006년 10월 대형 음악무용시 “천년아리랑” 조 안무담당- 제3회 중국소수민족회연 대상, 무용 “부채춤” 우수절목상, 무용 “북춤” 우수절목상, 길림성 제9회 장백산문예상 창작상

◐ 2007년 11월 무용 “서혼” 제6회 중국련꽃컵 민족민간무용콩쿠르 은상, 길림성 가무정품회연 창의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제6회 진달래문예상 창작상  

◐ 2007년 연변TV “해맞이 봄맞이” 음역설야회 무용프로그램 총연출, 2007년 서울

프라이즈TV부분 최우수상  

◐ 2009년 10월 대형가무 “장백산아리랑” 무용 총감독, 중화인민공화국창립경축 행사공연 참가, 2010년 상해엑스포 행사공연  

◐ 2012년 6월 대형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 무용감독, 제4회 중국소수민족회연 금상, 무용 “다듬이춤” 최고절목상, 무용 “얼씨구” 우수절목상  

◐ 2013년 10월 대형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 총연출, 제 14회 중국 국가문화부 문화우수극목상 ,문화안무상  

◐ 2016년 8월 중국조선족 창작무극 “아리랑꽃” 총연출, 제5회 중국소수민족 문예회연 금상

◆영예칭호

“길림성 제13회 중청년 돌출한 공헌 전업기술인재”

“연변주 우수정업 기술인재”

“제5회 연변주 10대 녀걸”

/박홍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