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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만드는 사람“  민족악기의 맥을 이어 갈터”


소리를만드는사람민족악기의맥을이어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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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세상에존재하는가장아름답고미묘한소리이다.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주는 마법같은 산물이다.

악기가소리를만들어내고, 그 소리가 또다시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을 만들어내기까지, 그 소리의 배후에 한 장인의 60년 세월이 고스란히 슴배어 있다. 악기의 탄생지인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 그 현장에서 악기만들기의 장인, 김계봉 선생을 만나 그의 60년 악기인생을 되짚어보았다.

악기와의만남을그는가난이낳은능력이라고일괄했다.어릴적 가난한 살림에 악기에 유독 애착을 느꼈던 김계봉, 강한 소유욕에 사로잡혀 결국 그가 선택한 것ㄴ 살수없다면만들자!라는강한집념이였다. 12살 어린 나이에 기억속 악기의 특징을 속속 끄집어내며 일본군이 먹다 버린 통졸임통을 주었다. 생에 첫 자신만의 악기- 양금을 만들었던 어린 김계봉, 그것이 시작이엿고 첫발이였다.

소학교군악대에 “입성”한 김계봉, 본격적으로 다양한 악기들과 접촉하며, 악기들의 특성과 소리를 걸탐스레 뇌리에 새기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악기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설계도”를 그려가는 과정이였을터…뇌리속에 새겨진 악기들의 소리와 특성이 그만의 악기만들기 “교본”이였다.

살짝머리가갸우뚱해진다. 어떻게 한번 본 악기의 특징을 속속 끄집어내 손제작으로 미묘한 악기를 만들어낸단 말인가. 이에 대해 김계봉 선생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알고보니 할아버지 세대에서부터 부모님까지 손으로 하는 모든건 못하는게 없는 만능 재주꾼들이였단다.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맨발의 의사로 활약하셨던 아버지는 의사라는 거룩한 직업외에 마을 집집의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뚝딱 만들어낼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손재주를 가진 마을의 “보배”로 칭송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선조들의 재간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김계봉 역시 어려서악기 사랑 역시 대대로 물려받은 외길사랑이였던걸가. 아버지에 이어 큰형 역시 악기라면 오금을 못쓰는 애호가였다. 남의 집 소를 1년간 방목하며 키워준 대가로 받은 새끼송아지, 그 송아지를 팔아 바이올린을 장만한 큰형, 큰형의 철두철미한 감시때문에 가까이 있어도 감히 만질수 없었던 바이올린에 대한 애절한 “짝사랑”때문에 속꽤나 썩였던 김계봉이였다.

하지만그렇게장만한바이올린도결국어려운살림때문에다시팔아야했던서러움, 큰형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다시 두팔 걷고 나선 김계봉 선생은 나무를 깎고 다듬고, 전화기선에서 가는 철사를 얻어다가 제법 그럴싸한 바이올린을 만들어냈다. 비록 투박한 외관에 불협화음이 거슬리긴 했지만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바이올린이였다.

하나, 둘, 김계봉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악기의 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정교하고 더 잘 다듬어진 소리를 갖추기 시작하는 수제악기들, 수량과 종류도 점점 더 다양해져갔다. 자체 보완과 업그레이드를 통해 점점 더 완벽한 악기를 만들어가며 명실공히 악기장인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부터아버지못지않게못하는게없는희한한재주를자랑했다고.

20살이 되던해, 연길농업대학 교원으로 교편을 잡은 김계봉, 그 즈음 연길시에서 군인가족들을 모아 렬군속 복무사를 설립, 복무사에 3명의 로일대로 무어진 “악기작업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달음에 악기작업장으로 달려가 합류할 의사를 비춘 김계봉, 절대 놓아줄수 없다는 농업학교 지도부측과 없어서는 안될 인재이니 꼭 영입하고싶다는 악기작업장 관계자들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소원대로 철밥통인 교원직을 뒤로하고 악기작업장에 기술원으로 합류한다.

모든악기의설계와제조, 마감작업까지 꼼꼼히 맡아하면서서 오매불망 사모하던 악기들과 매일매일을 함께 할수 있다는 기쁨에 젖어든다. 그렇게 악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뒤로 장장 60년 동안, 김계봉 선생은 한눈 한번 안팔고 오로지 악기연구와 제작에 자신을 오롯이 올인했다. 그의 손을 통해 제작된 각종 악기들은 장고, 손북, 퉁소, 가야금, 거문고, 바이올린 등등…종류만 해도 20여종, 개수는 이루다 따질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악기들은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선호를 받으며 인기절정을 달렸고, 오묘한 음악소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고객들이 있어 에너지를 얻고 힘을 얻을수 있었다며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김계봉의악기제작기술은분야에서명성을떨쳤다. 1985년 중국악기전문가 칭호를 수여받았고, 국가 문화부 대표단 성원으로 조선방문길에 올라 조선측 악기연구가들과 학술회를 통해 상호 악기제작에 관한 교류를 진행, 200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로부터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프로젝트 민족악기 제작기술 대표전승자로 명명받았다.

김계봉선생의부단한연구와창신은기존의 12현 가야금을 현재의 21현, 23현, 25현으로 개량해내 보다 풍성한 음역대를 통해 다양한 소리를 튕겨내는데 성공했으며 그외에도 모듬북을 비롯해 전통악기의 현대적 개량에 늘 신경을 도사리고 있다.

현재연변에서진행되는크고작은축제나행사에서김계봉선생이직접지도편달해제작해낸  악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이나 국내 내지에로 수출되기도 한다.

악기제작의장인으로, 감히 넘볼수 없는 유아독존의 경지에 다달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며 고집스런 표정을 짓는다. 부단히 개조하고, 부단히 업그레이드 하고, 부단히 보완하면서 보다 완벽한 악기를 만들어 내는게 그의 평생의 꿈이고 목표였듯이, 악기 제작에는 영원히 끝이 없다며 80고령에도 여전히 손에서 악기를 놓지 못하는 고집쟁이다.

수많은제자들을두었고제자들이현재사회각계에서나름의소임을다하고는있다지만여전히악기에대한애착에사로잡혀매일악기제조현장에서일일이함께해야직성이풀린다는김계봉선생, 자신의 악기제조 노하우를 소책자로 만들어 내부 기술자들의 참고서로 제공했다. 언젠가 그 기술들을 집대성해 자신의 이름을 딴 악기제작 비법책을 출간할거라는 김계봉 선생, 악기 음부에 녹아든 그의 60년 인생이 아름다운 선률로 길이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 박홍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