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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음악은 장단을 떠날수 없어”

                 - 연변제3대 농악장단 대표적 전승인 진경수 씨를 만나



장고는 조선족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을 이루는 타악기로서 우리의 음악은 장단을 떠날 수 없어요.


장고 또는 장구는 우리 민속음악에서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타악기로서   조선시대 성종 재위 기간에 편찬 된 악학궤범乐学轨范 이미 장고를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으며, 실제로 고려시대 보다 더 이전부터 장고가 널리 연주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농악 여러 타악기의 합주시 미세하게 분할된 리듬을 연주함으로써 타악의 리듬형을 다채롭게 만드는 역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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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받고 있는 연변제3대 농악장단 대표적 전승인 진경수 씨(오른쪽)

장고는 제작 재료 또는 모양새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또 장구는 양쪽   편을 만드는 재료로 노루가죽과 개가죽을 썼기 때문에 ‘노루 장獐’과   ‘개   구狗’의 조합에서 나온 이칭이라고도 설명한다.


우리 신변에서도 장고의 흔적은 남아있다. 지난세기 40년대 훈춘 경신 경내에서 있은 소련홍군과 일본군의 격전인 장고봉전투 전적지 장고봉은 산 모양이 장고 같다고 해서 원래는 장고봉长鼓峰이라 불리워졌다가   오늘의 장고봉张鼓峰으로 개칭된 것이다.  


조선이주민이 동북으로 이주하면서 많은 민속놀이와 악기가 이 땅에 고스란히 옮겨져 새롭게 계승, 발전되면서 오늘에 이르면서 중국조선족무형문화재를 형성하고 있으며, 장단 역시 그 일종으로써 오늘날은 중국조선족 제3대 전승인까지 이어져 왔고, 작년 연말에 조선족 농악장단은 길림성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대중 앞에 다가서게 되었고 전승과 보급과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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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문화관에서 주최한 천명농악놀이에서 상쇠담당 진경수 씨(2017).

오늘은 중국조선족 농악장단의 제3대 대표적 전승인 지경수 씨를 찾아 농악장단이 길림성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1992년 8월, 중국 땅에서 처음으로 4명으로 된 농악장단 팀을 무어가지고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40주년 공연무대에 올려 선보이던 때가 어느덧   30년 세월이 흘러갔고, 지경수 씨 역시 20대 중반에서 이제는 머리가 희석한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하여도 오늘의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 단지 즐겨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깐 거기에 몰두하고 나아가 미쳐버릴 정도로 몰입하면서 하루하루를 단조롭고 힘겨웁게, 그러나 즐겁게 보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장단과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가족내력으로 보아도 특별히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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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한국방문차에 은사 김덕수 선생님을 모시고(2017)

지경수(1966) 씨는 현 연길시 이란진 위자구에서 태어났다. 당시 위자구는 도문시 관할에 있었고 평범한 농가에서 여느 아이들과 다름이 없이 농촌마을에서 소학교를 다녔고 초중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신체가 허약했고 농사에는 퍽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였으며 평소에 놀음기가 있었나 보다. 고중에 승학하게 되였고 로투구 2중에서 전 주 범위에서 문체반文体班 모집하는 찬스를 맞게 되면서 한 선생님의 추천서를 지니고 1981년고중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연히 춤도 추고 악기도 두루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졌고 그렇게 2년을 보내다가 졸업하면서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부득히 농사를 짓게 되였다. 1982년 귀향하여 1987년 상반년까지 온갖 농사일을 익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가 연변대학교 예술학부 대학전과반인 음악사범전업에 입학하게 되었다. 악기와의 인연은 이렇게 뒤늦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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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보호중심 음악회에 초청으로 오신 은사 정철기 선생님과 함께 있는 진경수 씨(오른쪽).

중소학교의 음악교원을 양성하는 목표이기에 손풍금, 피아노는 기본으로   배워야 했고, 그외 제2교실이 설치 되었는데 지경수 씨는 드럼에 눈길이   갔다. 특별한 느낌이 있은 것도 아니고 그저 두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 배치 되었고 연주를 하게 되면서 장고도 배우기 시작하였다. 당시 가야금 연주가 김성삼 선생으로부터 1년간 장고를 배웠다. 김성삼 선생은 가야금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인이며 가야금과 장단을 함께 가는 악기인만큼 필수적이였던 것이다.


장단에 입문은 하였으나 숙련은 자신의 몫이였다. 예술단 기숙사에 있으면서 지경수 씨가 하는 일은 장고 치고 북 치는 일이었다. 일요일에도 휴식 없이 아침에 밥 먹고 시작하면 저녁 잠자리에 들때까지 두드리일밖에 몰랐다. 친구도 멀리하고 술자리도 피해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니깐 지치는 줄도 모르는 망아 경지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타인에게는 정신나간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한 것이다.


1992년 8월, 지경수는 4인으로 된 농악장단 팀을 무었다. 우리가 말하는   사물놀이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고 그때가 자치주창립 축하 공연으로서 많은 인끼 몰이를 하였다. 중국땅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농악장단인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까지 장장 30년을 이어왔고, 그중 인원 탈리가 있으면 새로운 맴버를 양성, 보충해 왔고 현재는 유일한 창단맴버로 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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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앙텔레비죤방송국3채널 무용프로그램에서 “전승” 프로를 제작하는 장면.

농악장단은 진경수 씨에 의하여 점차 보급되면서 그 매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였다. 10여 년간 연변TV음력설야회 인끼 종목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연길시중앙소학교, 연길시소년궁, 연길시 6.1유치원, 연길시신흥소학교   등 요청에 의하여 진경수 씨는 장단강의를 맡으면서 농악장단을 보급하고 많은 장단 연주자를 양성하였다. 2011년 진경수 씨는 연변주무형문화재 장단 대표성 전승인으로 지정되었다.


장단의 보급에는 매체나 학교의 힘이 많이 보탬이 되었다. 2010년부터   2020년 10년에 거쳐 지경수 씨는 연변라디오방송 문예프로인 오미란의우리가락 노래가락 출연하여 매주 1회, 40분에 거쳐 장단 교학방송을   담당하였고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무용전업 장고수업 담당교수로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면서 보급 뿐만 아니라 상대에 따른 교학방식의 차별화를 모색하면서 교학의 질을 높여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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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중앙음악학원 특강을 마치고.

2019년 연변대학에서 국가예술기금 항목을 쟁취하여 예술학원의 주관으로 중국조선족농악무학습반을 개최하였는데 지경수 씨가 농악장단 지도교원을 맡게 되었다. 농악장단 학습반은   30명을 모집, 5명 연변지역 학생외 25명은 상하이, 대련, 베이징, 남경, 무한, 중경 등 전국 각지에서 온 한족학생이었다. 학생들은 무용선생 출신이었고 이들은 2개월 학습을 거친   후 각자 지역에 돌아가서 농악장단을 보급하고 논문을 발표 등 증병자료를 교부하여야만 1년 후에 수료증서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이는 농악장단의 보급, 특히 연변 외 타지역의 보급에 커다란 추진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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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북경에 있는 소학생(9세)허교교许娇娇가 반급활동에서 조선족장고와 진경수를 소개하고 있다.

진경수 씨는 장단은 근본이고 기본이며 첫째가는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상모 역시 장단과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장단의 연주법에서 속도 조절, 강약파악을 잘해야 하며 편성에서 난이도에 따라 시간적 배정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단의 연주는 또 가락에 맞는   몸놀림, 표정관리 등도 홀시할 수 없는 부분이며 사람과 장단과 악기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면 연주에는 정감이 묻어나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장단을 타라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대로 순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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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뉴스종합방송에서 증정한 공로패(2020년).

진경수 씨는 중국조선민족타악절목(사물놀이)의 창시자의 한사람이며 국가1급연주원(2007)이며 중국타악협회 유일한 조선족 이사(2017)이다. 그의 소원은 현재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외아들을 중국조선족 장단의 새로운 계승자를 육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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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오덕된장축제에서 아들과 함께.

장단은 단순한 타악기 연주 기교가 아니라 한단계 상승하여 볼 때 율동감이 중요하다는 지경수 씨의 견해, 무용은 율동감을 배양하는 좋은 수단이라는 것이다.


장단과 떨어지지 못하여 격정적으로 지내왔는데 지금은 차분하고 조용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는 지경수 씨. 새로운 도약의 직전에 있는 듯   하다.

                                      (글 육삼. 사진 진경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