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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는 “밉게 쓰는” 것이 어렵다.

  - 훈춘시제2고급중학교 서예교원 신상국 씨 인터뷰


서예는 현재 중국에서 날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화전통문화를 강조하면서 서예는 핵심적 가치로 인정 받으면서 중소학교를 대상으로 서예교재가 편찬되고 단독 과정으로 개설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서법과를 설치하면서 학과 뿐만 아리라 석사 과정까지   설치되고 었다. 현재 서법 전문교사가 전 중국적으로 50만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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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국 씨   서예는 글쓰기 실기도 중요하지만 이론적 바탕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중국의 조선말 학교에서 서예는 그토록 고귀한 대접은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홀대 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가정에서 자식을 서예서클에 보내고 있으며 적지 않은 직장인들도 멋을 부리면서 가끔 서예학원에 다닌다. 또 일부 조선족 중학교에서도 별도의 서예과정을 설치하고 있다. 비록 대학입시 학과는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 마음을 다듬고 예술적 수양을 높이며 옳바른 인격 양성에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상국申相国, 서예에 모든 것을 건 고등학교 서예 전문 교사이다.


02-1s.jpg        글자를 쓰고 있는 신상국 씨


02-2s.jpg      서예 강의를 하고 있는 신상국 씨

신상국(1971) 씨는 훈춘 마적달향에서 태어나 초중을 고향에 다니었고   1987년 진학하여 연변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 서예과가 설치되였고, 점차 서예를 접촉하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졸업하여   마적달중학교에서 미술과를 가르치면서 서예서클을 조직, 15명 학생들을   묶어 서예서클을 시작하였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서에라 하기보다는 단순한 글자 쓰기였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연변의 허다한 서예가"들은 북한에서 들어온 신문, 잡지 또는 영화 자막을 통하여 그쪽의 천봉체라는 글자체를 익히였고 한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진 후에는 점점 늘어나는 상호   교류를 통하여 서예 세미나 또는 서예 전시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서예인   궁체 등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이 당시 중국조선족서예의 현주소였다.


신상국 씨는 2000년 훈춘시제2고급중학교로 전근되어 1학년 미술과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글 서예를 강의하게 되었다. 신상국 씨는 이 시기 자신의 계몽스승인 고 오명남 서예박사를 만나게 된다.


량산梁山 오명남吴明男 씨는 길림대학교 고적연구소에서 서법문헌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4원교와 추사의 서예 비교 연구 논문으로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논정수书论精髓, 서론선독书论选读, 서법서도서예논- 양산서논집 저서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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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명남 박사.   신상국 씨의 계몽 스승이다.

오명남 박사는 서예이론과 서예실기 실력을 두루 갖춘, 중국조선족서단의 중견으로 평가받는 인물, 서울에서 서예전문지 월간 서예를 통하여   활발한 학술 및 전시활동을 하던 황금시기를 접고 건강원인으로 인하여   연길로 돌아오게 되었다. 신상국 씨는 오명남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2006년부터 주일마다 연길로 다니면서 서예공부를 하였고 매년 방학이면 일주일 이상 연길에서 먹고 자고하면서 강의를 듣고   오 매번 남겨주는 글씨 연습을 마무리하고는 다시 쓴 글씨를 갖고 와서 평의를 받고 수정하고 다시금 새로운   숙제를 받아가면서 게으름을 피울새 없이 다망하게 보냈다. 월급쟁이 신세라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았으나 이때부터 신상국 씨는 서예의 포로가 되기 시작하였다. 2007년 양산서화학회가 세워지면서 신상국 씨는 창립맴버로 되였고 동인들과 교류, 학습을 하면서 서예의 예술성에 대하여 눈뜨기 시작하였다.


우리 많은 사람들이 서예공부를 하는 것은 글씨를 곱게 쓰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 차원을 넘어서면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는 것이다.


글자를 곱게 쓰려면 5-10년이 걸리고 밉게 쓰려면 평생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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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급   상을 수상한 신상국 씨의 서예작품

서예는 완벽한 예술로서 미술이나 음악처럼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내면에서 인생철학과 서예가의 마음과 지식이 밑거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실물과 똑같게 그리는 것이 미술의 기초라면 실물의 변화와 내적 움직임과 미적 향수를 그리는 것은 고급적 미술, 현대 또는 초현실주의   미술인 것이다. 이러한 승화가 없으면 미술은 존재할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는 원시적으로 생겨났지만 똑같게 그리는 작업은 썩 훗날에 발명된 사진기를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촬영이 존재하면 되지 똑같게 그리려는 미술이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미술은 붓과 색채로 인물과 자연형태를 통하여 화가의 의도를 표현하지만 서예는 극히 단순한 붓과 먹과 글자를 통하여 서예가의 의도를 적는다. 그림처럼 색채와 공간과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처럼   흐름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서예는 모든 예술의 최고경지라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가?


서법은 험악한 길입니다. 곱게 쓰는 평정平正 단계를 거쳐 험절险绝 길에 들어섭니다.

모든 예술은 천부성을 통한 지식과 대뇌의 싸움이다. 예술품은 작가의 철학, 문화, 인생관, 경력 나아가 성격의 종합물인 것이다, 표현하는 형식과   수단에 따라 미술, 음악, 무용, 촬영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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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받고 있는 신상국 씨

서예는 선 또는 획을 이용하겠지요. 획의 굵기와 가늠, 길이와 짧음, 필획에 숨겨진떨림의 강약, 글자를 구성하는 획 사이의 공간의 비움과 공간의 위치 선정, 획으로 이루어진 글자 전반의 조화로움, 그리고 획 마무리 끝 단계의 방 또는 형태, 나아가 획의 각도角度 선택 등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서예는 묵을 매개로 합니다. 묵 사용의 진함과 연함 등 먹 색상의 변화 역시 서예가의 마음을 표현하며 전반 서예작품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서예는 붓을 도구로 합니다. 같은 붓이지만 붓놀림의 빠름과 늦음은 각이한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자체의 선택 역시 서예작품의 가치와 서예가의 의중을 반영하는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많은 경우 서예작품은 수 개의 글자로 이루어 진다. 위에서 말한 것은 글자 하나에 관한 역설이고, 이러한 글자가 모여 작품을 이룰 때에는 개개의 글자 특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조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서예가의 예술적 재간인 것이다. 한행 글자 수의 배치, 글자와 글자의 공간적 위치,   글자크기로 이루어진 작품의 평형감, 묵상의 변화로 표현하는 작품의 율동감 등은 우리가 늘 말하는 통제론控制论시스템 공정 같은 작업이다.


신상국 씨는 고달픈 서예의 길에서 초학자로부터 중국조선족 서단의 중견으로 성장하였다. 2019년 훈춘시진수학교의 요청으로 중소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서법강습반 강사를 담당하였다. 일주일간 강의를 하고   매 학원들의 작품을 평점하고 다시 수정된 작품에 대하여 평의하면서 서예에 남다른 애착과 헌신정신을 보였다. 서법강습반은 2020년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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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강습반 학원들과 기념촬영

 

글자 쓰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나중에서 그 법에서 벗어나야 하겟지요. 그렇지 않으면 서법의 노예가 됩니다.

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풀이 된다.   이 경지에 이르려면 고정되고 죽은 작품이 아니고 움직이고 향기 있고   깊이가 있는 자아감성과 감정의 정화된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생명이 있으면 생명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본질이다. 움직이는 것은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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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국 씨의 서예 작품

내가 가장 좋다고 평가하는 서예작품을 10점 만점으로 한다면 전통성이 6점을 차지하고 창신성이 4점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작자의 것이나 밑바닥에는 두툼한 전통이 깔려있는 것이다. 전통을 벗어난 창신은 없으며 제멋대로 글자를 써 놓고는 무슨 글씨체라 이름을 달고,   또 우리만의 연변체 주장하는 경향도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 문턱에   서   있지 못하고 있어요.

지나친 욕심은 자멸의 길이며 이는 주화입마走火入魔, 비아복화飞蛾扑火격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서예는 훈민정음에서 시작된 정음체 또는 고체가 시초이며 훈민정음은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서예의 비약을 도모하려면 우리는 한자서예를 잘 연구하고 모방하고 나아가 창조에 이르러야 합니다.


한국서예사의 원광 등 대가들 역시 중국의 비문碑文 글자체를 극심히 모방하고 배웠으며 중국의 서성으로 받들리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303-361)의 진수를 그토록 애타게 연구하고 터득하려 했던 것이다.


붓이 노래하고 묵이 춤추는 필가묵무笔歌墨舞라고 후세는 원교의 서예를 극찬하였다.


신상국 씨는 평범한 일터에서 도인처럼 서예를 수련하고 있다. 갈길은 험하고 멀고, 고달픔과 깨달음의 번뇌는 그림자가 될 것이다. 화창한 해빛이 눈부실 때 그림자는 사라질 것이고 인생은 진수를 맛보는 것이다.   (글 한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