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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익]  조선전쟁의 나날을 회억하여 (12)

微信图片_20210729145622s02.jpg   조선 해주에서(1950.08)



12.   B29폭격기를 피하면서 전장터에 다시 가다


치료를 마치고 나는 곧바로 부대를 찾아 떠났다.


미군이 낮에는 빈번히 비행기로 폭격하기에 나는 밤을 타서 행군하고 낮에는 안전한 곳을 찾아 자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그날, 평안남도 순안顺安(현 평양공항 소재 지역)에 이르렀고 그곳에 주숙했다. 나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곤드라제 잠이 들었다. 온 밤의 행군에   몸이 몹시 피곤했고, 당시 최대의 생리수요는 수면이었다. 피곤함이 나에   대한 영향은 심지어 기아를 넘어섰고 한잠을 푹 자는 것이 포식하는 것보다 더 매혹적이였다.


내가 누워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사람들이 “B29가 왔다. 방공호로   피하라”고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B29은 당시 미군이 조선전쟁에서   사용하던 대형 폭격기이다.


나는 경험적으로 판단했다. 지금 밖으로 뛰쳐나가도 방공호까지 갈 수가   없었다. 방안을 둘러보았다. 발밑에 이불이며 요가 쌓아 있었다. 내가 발로   처서 이블과 요를 주어 몸을 덮는 순간 폭탄이 날아들었다. 창밖이 불시에   어두워졌고, 이어 강력한 충격파가 내가 기대여 누웠던 방의 남쪽 벽과 출입문이 무너져 나갔다. 삽시에 나는 무너져 내리는 기와며 벽체에 파묻혔다.


그날, 미군은 민가만 폭격한 것이 아니였다. 내가 든 집에서 약 100미터 상거한곳에 농촌시장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장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번 폭격에 100여 명 평민이 폭사를 당하였다.


공습경보가 해제되어 사람들은 폐허에서 나를 파냈다. 내가 이불과 요로   몸을 덮은 덕에 다시 한번 죽음의 손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평양의 조선인민군 무장부 간부관리위원회를 찾아갔다.   그들은 새롭게 나를 배치하였고, 나는 조선인민군 527부대에 배치되었다.


527부대의 주된 임무는 신입전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신입전사들은   문화정도가 높은 중학교 졸업생 중에서 뽑아온 신입 전사들에게 전업기능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1년간 사업을 교원으로 일하였고, 선후하여 녕변宁边, 운산云山과 북진北镇 등지에서 세번에 나누어 학원들을 전선부대에 보냈다.  


나는 유탄포(곡사포)조작 기술, 즉 포수가 목표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의   사격방법을 강의하였다. 소련의 교재 요구대로 8개 공식을 이용하여 사정   및 포신의 각도를 계산해야 하기에 학원은 일정한 수학기초가 있어야만 했다.


1952년, 나는 신체검사를 하였으며 부상으로 제대했다. 부대에서 제대할   때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영광스럽게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이는 나에게 있어서 특수한 의미를 갖는 승리이다. 다른 하나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이다. 전쟁으로 중단 된 학업을 완수하여   원만한 결말을 구하는 것이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