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노력으로봉사의새개념보여주어야”/안영철 연변한인회장 인터뷰“나의노력으로봉사의새개념보여주어야” - 한인회에서 창업교실 개설, 취업에 일조할 것
1992년 중한수교를 계기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나들이를 시작했다. 시탐적인 행차가 많았고 수년 뒤에는 시험적인 투자나 작은 회사를 차리는 이가 늘어났다. 대체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은 쉽게 알 수가 없고 또 언어적인 소통에 문제가 있기에 급히 자리를 정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였다. 당시 한국인에게 있어서 중국에 오면 한번쯤은 기어코 가바야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연변에 있는 장백산이다. 한국인은 장백산을 성산으로, 조상의 발원지로 여겨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곳은 신비의 고장이다. 오늘인터뷰대상은안영철연변한인(상)회 회장, 해병대 출신이다. “처음에는광주에갔댔습니다. 1996년이지요. 후엔 위하이로 와서 1년간 생활하면서 농수산물 가게를 운영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백두산 구경을 하게 되었고 연길에 와서야 중국에 조선족자치주가 있으며 이곳에 한인(조선족)이 집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한국에 있을 때 전혀 몰랐지요. 언어가 통하고 모든 습관이 거의 같고, 편리하지요. 그렇게 연길에 정착했습니다.” 연길에서모텔도경영하고참숫공예품공장을차리고미국, 한국에 제품을 수출했다. 2001년 10봉사단체인 연변해병전후회를 창설, 7년전에는 암반수정수기 경영조립공장을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 4월에 연변한인(상)회 회장에 취임했다. “미국으로건너간한국인도처음에는최하층에서일했지요. 지금의 재한조선족의 처지와 매우 비슷해요. 최하층에서 일하니 당연히 불공정 대우를 받았을 것이고 불쾌감이 생기고 거기에다 문화의 차이까지 있으니 짧은 시일내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적응되면 동등한 일을 하게 되고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재한조선족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이 한국인에 대한 좋이 않은 인상, 나아가 적대적인 감정 역시 그럴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하지만세상만물은시간의흐름에따라변화하고변화는또새로운모습과사회적지위를부여하여주는것이다. 변화지 않는 것은 그러한 변화를 무시하는, 또는 모종 심리적 작용으로 인하여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주관적 태도일 것이다. “한국의조선족의변화는과목할정도지요. 얼마전만 해도 노무수출, 저수입층으로 지목되었지만 최근 4, 5년은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기업하는 사람, 무역하는 사람, 그리고 공직에 취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 직위나 신분도 예전과는 틀리지요. 게다가 중국의 거대한 발전은 재한조선족에게 새로운 비전의 기회로 되고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재한 조선족은 한국인보다 우세입니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재한 조선족은 한국에서 충분히 발전하고 결과적으로는 다시 고향에 와서 재창업, 새로운 앞날을 개척하는 것입니다. 필경 한국에 영구적으로 남아서 한국 주류사회에 합류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력 상황에서나 또는 한국사회 특징에서 볼때 다 불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조선족사회는과도한해외유출로인하여돈을버는대가로이중고초를겪고있다. 한국에 나간 부모는 가족과 헤어지고 가정교육을 포기한 고초에 시달리고 남아있는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잃고 고독하게, 또는 그 대가로 과도소비라는 악재에 몰리고 있다. “청소년에게이사회는교육이부족합니다. 급선무는 철저한 교육을 받아 재중기업 등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지만 할 항목이 마땅치 않으면 외지진출 선택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인회는 조선족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지요. ” 사회구성원에게있어서가장중요한것은취직이다. 개인적인 의지와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객관적 환경 역시 홀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저희한인회에서는한국코트라와합작하여연길에창업교실을개설할계획을갖고있지요. 무료교육을 제공합니다. 한국 고찰을 조직하고 각 도와 협력하여 항목, 기술, 정보 등을 통하여 창업과 취업의 물고를 틉니다. 필요한 훈련과 강습을 제공하며 교과서 역시 무료 제공합니다.” 재중조선족사회와의화합을통하여지역사회발전에이바지함은한인회의중요한역할이고그러한사명에충직한다는것이안영철회장의의지이다. 취업뿐만 아니라 선진적인 봉사문화를 심어가겠다는 의지도 충분하다. “ 중국에서여성은만 55세면 정년퇴직이지요. 퇴직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요. 특히 퇴직 전 일정 직위에서 사업했거나, 사회관계망을 갖고 있는 여성은 퇴직 후 제2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가정부담이 없고, 남편이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은 더욱 그러합니다. 저희 한인회에서는 이러한 퇴직여성을 조직하여 황혼 레스토랑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수입금은 전액을 봉사에 사용합니다. 당연히 황혼 레스토랑 직원은 무료 봉사합니다. 월급이 없지요. 저희들은 한국에서 강사를 청하여 그들에게 무료로 기술을 전수합니다. 음식만들기 등이 주요 항목입니다. 이렇게 훈련 받은 여성은 다시 자신이 강사가 되어 조선족 여성들을 무료로 훈련시킵니다. 그들이 창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한인회는 한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통하여 창업의 필요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필요한 합작파트너를 소개하는 것이죠. 더욱 많은 당지 조선족이 취업하고 창업하고 재한조선족이 귀국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는 취지입니다. 조선족사회와 한인회가 공동히 생존하고 발전하고 번영해야 합니다.” “돈주는봉사”이다. 한번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전통의미의 봉사개념이 아닌 내가 창출한 수익을 다시 봉사활동에 기부하는 양성순환의 지속적인 봉사이며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봉사실천이다. 조선족 사회는 받은 자는 노력할 줄 알고 여유가 있는 자는 받칠 줄 아는 그러한 높이의 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상업적인 논리를 떠나 사회의 화합과 친목을 위한 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연변은동북발전과동북의새시대를열어가는중심지대지요. 한중 FTA도 체결되었고 주변국과의 관계도 어느날은 풀릴 것입니다. 연변조선족사회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스스로 발전의 기초와 바탕을 닦을 때가 온 것입니다. ” 현재연변에는 1만 3000명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국적을 취득한 13만 5000여명의 생활 터전이다. 연변지역이발전과더불어우선남성의취업문제를해결하고가정의기둥을튼튼히하고재중한국인사회와의공존공영의새로운앞날을기약하는것이우리의소원이아닐까?!
기자육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