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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말의변화, 좋은 일만이 아니다./  박기완 교수 인터뷰

중국조선족말의 변화, 좋은 일만이 아니다

- 적응은 특색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2010년 2월 운남성 리쟝에서 샹그리라 가는 길의 금사강.jpg


제가 2002년 처음으로 연변에 왔습니다. 그때 연변말씨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말입니다..., 마일게없니?, 보기쇼, 빨리오쇼, 우리집안까이,  등은 언어를 전공한 나에게는 매력적이요.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오늘에는 그러한 모습이 많이 달려졌고 변화라는 소용돌이속에서 점차 많이 서울화되는 느낌을 받지요. 물론 좋고 나쁘다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이것은 좋은 일만이 아닌 것이지요.

언어학자박기완교수의관점에서보면오래된모습, 원래의 모습을 더 완벽하게 보존한 언어가 더 큰 연구가치가 있는 것이다. 중국조선족말은 해면에 스며드는 물처럼 중국어, 한국어의 침투에 서서히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북3성에서 주로 쓰는 중국조선어는 한반도 남쪽 한국에서 쓰는 한국어나 북쪽의 조선에서 쓰는 조선어와도 다른 말이고, 또 중앙아시아 여려 지역의 이른바 고려인이 쓰는 조선어와도 다른 말이죠.

조선어의역사를보면처음에는조선어소사전(1956, 조선과학원 편), 후에는 조선말사전(1960-1962, 조선과학원 언어문학연구소 편)에 준하였고, 철자법은 조선어철자법(1954)에 준하였는데, 띄어쓰기는 1970년부터 중국 자체로 정한 띄어쓰기준하였다. 그러나 조선어 띄어쓰기 규정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문법도처음에는박상준의조선어문법(1949), 후에는 김수경의 조선어문법(1954)

가져다중학교교과서로했다.

1977년 이전에는 조선의 조선어문법을 그대로 따랐으며, 1977년 동북3성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가 설립되면서 조선어규법화가 자체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어요. 1977년 전후로 일반어휘를 비롯하여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술용어 7천 여개를 심의 통과시켰고, 그리고 규범성을 띤 조선어문법편찬하였습니다. 19958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9차회의에서 일부 수정보충하였는데 그때 대체로 한국의 것을 따랐습니다.

1960년대 초 주은래 총리가 중국에서의조선족언어는평양을기준으로해야한다지시함에따라방송뿐만아니라모든말을평양말을기준으로하다가 1980년 제2차 연변조선어문사업회의에서 표준어를계승하고발전시켜야한다원칙을  내놓은평양말을기준으로삼고써야한다원칙을이상제기하지않았다.

중국조선족은이주역사의특징조선이나한국의방언을많이따왔습니다. 중국에는 제주도방언을 제외한 한반도의 5대방언이 동북3성 범위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5대 방언이란 연변방언, 흑룡강성 방언, 요녕방언, 교하방언, 돈화방언을 가르킨다. 길림성 연변지역과 흑룡강성 목단강 지역에 살고 있는 90여만 조선족이 함경도방언을 쓰고 있는데 이를 연변방언이라 하고, 목단강 지역을 제외한 흑룡강성과 길림성 장춘시, 길림시에 살고 있는 50여만 조선족은 경상도방언을 쓰고 있는데 이를 흑룡강방언히라 부른다. 료녕성과 길림성 통화시 대부분 지역에 살고 있는 근 30만 조선족은 평안도방언을 쓰는데 이를 요녕방언이라 부르며 길림성의 이곳저곳에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에서 집단적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본 방언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전라도방언을  주고 쓰는 교화 지역의 말은 교하방언이라 부르고, 충청도방언을 주로 쓰는 돈화지역의 말은 돈화방언이라 부른다.

말이란것이본래그렇듯이지역에서오래쓰이면서나름대로의새로운모습을가지게되는거시죠. 특히 중국조선족은 국적이 중국이기때문에 중국말을 쓰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중국말이 한국말과 같거나 비슷한 어휘가 많기 때문에 이로 인한 혼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중국조선어는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지게 됩니다.

10, 20년 전만 해도 우리 일상에서 늘 쓰이는 조선족말 많은 특색적인 표현들이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조선족말 특색의 가치를 모르고 서울말을 접촉하면서부터 촌스러운 조선족말, 또는 연변말 흔적지위기에 서둘고 있었다.

내가들은바에의하면연변지역의조선족가운데에는  서울말이나한국의여러지방말들을연변말보다듣기좋은말이라고생각하는사람들이있었요, 그리고 실제로 가끔은 서울말을 거의 완벽하게 쓰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기실, 연변조선족말의 방언, 특색에 박교수는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실되어 감에도 아쉬움을 표하고 있었다. 연구대상이 가치를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20년전만 해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거부감이 없었던 연변말의 표현들이 지금은 우리마저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마 지금 10대나 20대초반의 후대들은 그 말을 들어도 보지 못했을 거고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상호 교류의 차원에서 볼 때는 진보 또는 적응이라 하겠지만 세상 어떠한 존재나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은 그 반면에 우리는 필요한 모종의 가치를 잃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가치가없었으며존재하지도않았을것이기때문이다.

우리나름대로돌이켜보아도연변방언은재미가있는표현들이많다.

처음연변말을접했을어색했던일도있고오해했던적도있었지요. 못 알아들은 적도 있고, 어째서, 감사함다, 여기앉으쇼, 우리나그네, 값이눅다, 따갑다, 시쿨다, 일없음다, 아재, 아매, 맏아매, 모름다, 있잖까, 내도마음속에숫자가있음다 등등은함경도의방언이나중국말의영향을받으면서연변말의특색을이루고있었지요.

오늘날의중국조선어는원래의모습을잃어가고있는데원인으로박기완교수님은  한어의영향, 현대 한국어의 영향, 영어식 외래어의 유입 등으로 꼽으며 조선족의 한어 열풍에 걱정을 토로, 연변조선족의사회심리의저변에는한어미신과조선어비관정서깔여있다고지적하고있다.

조선족사회변화는언어뿐만아니라일상생활에서도변화가많습니다. 이제는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않으며 뻐스안에서 밖으로 파지를 버리지도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침 출근길에서 본 일인데, 한 승용차 기사가 발을 앞으로 펴고 반쯤 누워서 창밖으로 트럼프 카드를 한장 한장 던지는 것을 보았다. 아침 바람에 내던져진 카드는 방향없이 사처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지요.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일이라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상식을 벗어난 일이 아닌가요. 그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그 일을 말했고 나의 놀란 생각을 말했더니 학생들이 표정이 어떠했을가요? 조금은 놀란 모습, 그런일에 왜 교수님이 저렇듯 희귀해할까 하는 표정이었어요. 학생들의 그러한 표정에 제가 더 놀랐어요. 그들의 눈에 교수가 정상인아닌거죠

박교수님은중국식의식탁과요리에도흥취가있었다.

친구와둘이저녁식사약속이있었어요. 그런데 가 보니 그 친구가 3-4명의 자기 친구를 부른거죠. 조금은 이상했어요. 그런데 식탁이 중국식 둥근 상이고 요리도 엄첨 많은 분량으로 나오더군요. 그때에야 중국식 식탁문화가 좋다는 걸 알았어요. 요리가 3-4개 나오고 둘이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 모여서, 여러명이 모여서 친구 사귀기 좋고 사람을 이어주고 엮어주는 방식이지요. 여러명이 함께 하는, , 그리고 요리는 여기서는 부의 상징이고, 참 높은 수준의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유감은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바꾸어지고 있어요. 둥근 식탁이 사각 식탁으로 바뀌고 1일분 신선로가 생기고…”

한국인으로서박기완교수처럼중국의동서남북끝까지여행한이는거의없을것이다. 승용차 여행으로서 한번 길 떠나면 14-20일 걸린다. 아내아 둘이서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귀주를벗어나운남으로들어서면자연환경이한반도와비슷합니다. 놀라운 것은 백족이 우리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으며 깎두기, 총각김치를 팔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고추가루를 쓰고 있었지요. 고추가루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유입된 것이죠, 그런 고추가루를 백족이 쓰고 있었어요.

고유의것을간직하고있을가치는영원히소실되지않은것이고, 그러한 고유의 것이 내가 소유하고 있던, 아니면 타인이 소유하고 있던 모두 소중한 것이다. 타인이 소유하고 있을  때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존재는 더욱 보귀한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한국말을 따라간다고 해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기자 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