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희 단편소설 4    쓰레기통 위의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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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통위의  

                             

작열하는태양이부서지는은빛란간, 그 란간너머로 언뜰언뜰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보인다. 란간 위 양쪽 거대한 돌기둥 사이에는 **시 30중학교 라고 쓴 기다란 패말이 암초사이에 걸린 허연 배처럼 가로로 누워있다. 조양공원 맞은 켠, 신세계슈퍼 옆, 엊저녁 광따(光大)전화에서알려준것처럼학교는찾기가그리어렵지않다.

아이들중에지금혹시(明)이가있을까? 량씨는 새벽 홰를 치는 시골 장닭처럼 목을 길게 빼들고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우친다. 버스가 빵 ㅡ 경적을 울리며 량씨 곁을 지나쳤고 마주오던 행인들이 슬쩍슬쩍 그를 훔쳐본다. 오십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적응할만도 해야겠지만 저번 겨울 이후 반년만에 출입하는 도시라 낯선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이 량씨는 그래도 적잖이 신경 쓰인다.

20년전 결혼식 때 맞췄던 곤색의 싸구려 양복이나 조물주가 성의없이 대충 주물려 박아넣은듯한 혐오감의 오관도 그러려니와 한 쪽 다리가 가늘고 무력한 탓에 심하게 기우뚱거릴수 밖에 없는 량씨의 걸음자세가 도시 사람들에게는 늘 상당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였다.

드디여란간앞이다. 이 시간에 들일 차량이 없는 이상, 물론 대문은 꽁꽁 잠겨있다. 그 대신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은 열려있지 않을까. 두리번 두리번 구석쪽을 살펴보고 있던 량씨를 향해 문뜩 어디서 튀여 나왔는지 모를 금박줄을 입힌 제복의 수위 하나가 석고상같은 얼굴을 하고 힘차게 손짓한다. 뭐요? 당신?!

적선을바라는장애인처럼보였던지, 여차하면 당장 물러가라고 내쫓을 태세다. 량씨는 삽시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다. 여그가 맞는디, 230번 버스 타고 조양공원 앞에 내렸으니께, 여그가 틀림없을턴디. 량씨는 되도록이면 착한 인상이 되여 보이려고 애써 웃음을 쥐여 짜며 늙은 수위한테 다가선다. 밍이 애비지유. 1학년 7반 량밍.

동생광따가밍이를입학시킬때에도늙은수위는오늘처럼까탈스러웠을까. 친 혈육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따는 량씨와 달리 키도 크고 잘 생긴데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제다까지 운전하고 다녔으니 아마 이따위 쓸데없는 의심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몇 해전에 돌아가신 량씨의 아버지가 노래말처럼 외웠듯이 광따는 운이 좋았는데, 읍내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무일푼으로 이 도시에 와선 어떤 전자상가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그만 그 가게의 외동딸과 결혼까지 해버린 것이였다. 그 것은 량씨한테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니였다. 중학반까지 있는 읍내 학교를 마치고 난 아들 밍이한테는 아무쪼록 가난한 절름발이 삼촌보다야 건강하고 넉넉하게 사는 삼촌네 집에 기거하는 것이 백번 나은 일이 아니겠는가. 량씨는 동생이 자기 대신 모든 입학수속을 마친 초겨울에야 옥수수를 팔아서 광따가 미리 대준 입학금이랑 밍이 생활비를 대충 맞춰서 찾아 갔었다.

량밍이라니? 늙은 수위가 량씨의 행색을 다시 한번 아래 위로 깐깐히 살핀다. 이 학교 학생 부모였단 말이요? 량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수위는 왜 이렇게 인상이 없지? 하는 얼굴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기둥 뒤편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기와서싸게싸인이나하시우~! 쫓던지붕쳐다보는격으로량씨가멀거니돌기둥만보고있을, 그가 미처 유념하지 못했던 돌기둥 아래 쪽에서 드르륵 네모난 작은 창이 열렸다. 일루, 누굴 찾아 왔는지, 학생 이름이랑 같이 써주시우. 길다란끈에허리를묶인원주필이수위가펼쳐놓은외래인원방문수첩위에서동동맨발을굴리고있었다. 1학년 7반 담임이라 합던데…” 하면서량씨는짜증이많은수위의얼굴을흘끔넘겨본다. 담임을 찾아 온게 아니라 그가 불러서 왔으니 뭔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은 늙은 수위가 듣는 즉시로 다시 샤시를 드르륵 닫아 잠글까봐 입밖에 내지 않았다. 1- 7반 담임이라, 마선생님이겠구먼. 따릉따릉전화기울리는소리에수위는량씨더러들어와기다리라는손시늉을해보이며테이블께로돌따서걸어갔다.

엊저녁, 금방 늙은 소 누렁이를 몰고 산에서 내려 오는데 량씨의 핸드폰으로 어떤 낯선 남자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였다. 량밍부모님이신가요? 저 밍이 담임인데요…” 마른옥수수대를한아름안고마당으로들이던안해가누렁이를앞세운량씨를보고걸음을멈추었었다. 아이고, 선상님! 선상님이 웬 일루…” 하나뿐인아들놈의선생님이란말에량씨는그렇잖아도항상발음을부정확하게버무려내는혀는물론, 온 몸까지 더불어 숙연하게 경직되고 있음을 느꼈었다. 우리밍이가아프나유? 누구랑 싸웠나유? 아니믄…” 머리속에서는온갖불길한단어들이엽총소리에놀란까마귀떼처럼푸득푸득어지럽게날아다니고있었다.

하하 남자가웃었다. 그런게 아니고 량씨는나쁜핸드폰신호밖에이용할수없는산동네의통신사정을탓하며일찍무뎌진청각을바짝곤두세웠다. 일은아닙니만, 그래도 부모님이 직접 한번 오셨으면 해서요. 여직 한 번도 오신적이 없으시잖아요. 삼촌이 얘기해주지 않던가요? 밍이 요즘 학습태도가 좀 그런데 그리고학적부, 학적부 문제도 중요한데 그니까, 학교는 계속 보내실 타산인거죠?...

시에만날건지약속은하고오셨남? 지금은 수업시간일텐데…” 수위가들고있던전화통을놓으면서량씨를돌아보았다. 큰 선심이나 베푸듯이 문 옆에 받쳐놓은 나무 걸상을 가리켜 보이면서. 아니, 내보구 오늘 오라구 혀서 온거인디, 무슨약속같은거이혀야한다나유? 수위는무슨구원자를바라듯이자기의얼굴만바라보는귀찮고무식한방문객을향해나원, 참! 한숨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그럼인제라두전화해보시든가.  근디, 전화번호는 가지고나 있수?

남자의전화를받고난, 량씨는 마음이 뒤숭숭해나서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다. 누렁이를 우사에 들이고 마당의 암탉들한테 옥수수가루나 둬줌 뿌려주고는 들어와서 안해가 밥상을 내올때까지 구들 턱에 걸터앉아 애꿎은 담배만 태웠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학습태도라니? 학적부 문제는 또 뭐이고? 혹시 여하튼공부를못한다는얘기같은데그게얼마나엄중한건지실실웃으며얘기하는남자의어투로미루어보자하니감이잡히지않아답답했다. 량씨는 평소 즐겨먹던 가지볶음도 몇 저가락 짚지 않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선 끝내 참지 못하고 부엌에서 덜그덩 덜그덩 사발을 헹구는 안해한테 소리를 질렀었다. 근디, 큰 시내학교들으는 아이덜이 공부 못하믄 부모를 오라고 허는가?

마당여기저기에널린둥우리에들어앉았던암탉들이저들끼리구구구주절거렸다. 글씨요, 시내학교 선상들으는 책임성이 강해서 그런가비지요? 타다남은 옥수수 대궁이들을  툭툭 발로 차서 한 쪽으로 밀어놓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쯤 드리워진 꽃천을 제치고 안방 문간에 안해의 모습이 나타났었다. 고중생이라서 그런거이 아니갔어요? 대학시험 볼 날이 머잖으니께요. 안해는 거품도 나지 않는 싸구려 세제에 젖은 손을 앞섶에 닦으면서 문간에 잠깐 기대여 섰었다. 안해는 특히 고중생대학이란단어를얘기할유난히힘을주어또박또박말했었다. 그 단어들을 들을때마다 량씨의 마음이 언제나 흐뭇해지고 대견스러워 진다는 것을 안해도 알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렇지? 그럴수가 있겠군.

안해는문지방을넘어량씨한테로조심조심다가왔었다. 왜, 그리 걱정되므는 삼촌한테 전화를 넣어보지 그래요? 량씨는 걸음을 옮길때 마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안해의 탄탄하고도 호리호리한 허리를 눈여겨 보았다. 그래, 그러지. 읍내하고 십여리나 떨어진 이런 척박한 시골동네에서 어디 이 여자만큼 날씬하고 얼굴 반반한 아낙은 등불을 들고라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량씨는 동네 사람들이, 지어 서른 다섯이 되도록 아직 장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앞집 송씨마저도 그런 안해를 둔 자신을 그다지 부러워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하고 량씨는 거멓게 그슬린 아래목 구들턱에 걸터 앉으려는 안해의 허리를 낚아채여 자기 쪽으로 벌렁 드러눕혔다. 우리 아들 밍이는 온 동네치고, 아니 전 대대에서 개국이래 유일한 고중생이 아니던가.

수위의말이옳다면성이마씨일남자는과연이제수업을들어가는중이라고하였다. 허허 아버님, 오셨군요? 미리 전화라도 주시지 4교시까지 쭉 수업이 있어서 한참 기다리셔야 하겠는데요?  그라므요, 아이덜 상과를 먼저 해야지유. 내사 노는 사람이니께 기다리므 되유. 량씨는수위가마주앉은책상이랑멀찌감치떨어져있는곁에바짝붙어앉아서바깥을내다보았다.  

파란인조잔디를널찍한운동장에타원형의하얀트랙이그려져있고, 가운데에는 듬성듬성 키가 훤칠한 농구대들과 네모반듯한 축구 꼴문대들이 질서 정연히 서있었다. 운동장 맞은 편에는 높고 깨끗한 건물들이 어깨를 결고 여러채 솟아 있었는데 어떤 것은 1층에서, 어떤 것은 2층에서 서로 통하게끔 통유리 복도로 이어져 있었다. 어느 건물이나 모두 읍내에서 가장 돈을 많이 들여 지었다던 정부청사 건물보다도 더 훌륭해보였다. 역시, 큰 도시가 다르긴 하이 저렇게선진적이고문명해보이는건물안에서아들밍이가하야말쑥하고똘똘한도시애들과같이어울려공부를하고있을거란생각에량씨는저도몰래입이벌어졌다.

운동장이끝나돌아오는곳에는바깥에서보았던은빛란간도구간보였다. 초가을 한 낮의 태양이 자글자글 란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 불볕이 식고나서 서늘한 10월이 와야 량씨부부는 일년동안 학수고대했던 옥수수를 비로소 수확할수 있을것이였다. 올해는 그리 가물지도 않고 큰 병충해도 없었으니 그만하면 풍작이겠거니와 이런 해에는 옥수수 값이 반드시 왕년보다 떨어지는 법이기도 하였다.

재작년, 또 한번 크게 발작한 안해의 입원비때문에 진 빚들이 아직 남았는데다가 이제 밍이 이후의 학잡비와 생활비를 지속적으로 마련해내자면 사실 일년 옥수수 농사 수익만으론 늘 빠듯할수 밖에 없는 량씨네 가계부였다. 다른 집 애들처럼 밍이도 소학이나 중학을 나와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였더라면, 안해가 더 이상 입원할만큼 크게 발작하지 않는다면, 아니 , 자신이 건강해서 다른 집 사내들처럼 농한기에 도시로 나가 일당을 벌어 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량씨는 상상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었다.

란간너머로꽃양산을받쳐든여자들이몇몇지나가고있었다. 광따의 처도 저런 꽃양산을 두개 가지고 있었다. 광따의 처는 또 안해가 만져보지도 못했을 밍크코트도 한 벌 가지고 있었다. 옹근 가죽이 아니라 조각을 무은데다가 길이도 약간 짧은 것이긴 해도.

저번겨울, 밍이가 광따네 집에 기거하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석달이 되여갈 즈음, 량씨는 첫 옥수수가 나오자 바람으로 거간꾼에게 넘겨 현금을 만들어 가지고 한달음에 달려가 광따의 처한테 쥐여 주었었다. 형님두, 옥수수는 설 대목이 지나야 높은 값 받는거 아니유? 밍이가 먹으므 얼매나 먹는다구 밍이먹는값보다야우리(娟)이가먹는과자값이들지…” 하면서광따가물고기요리듬뿍짚어서량씨의공기밥위에놓을, 순간 광따의 처 눈에서 레이저 같은 것이 찔 나와 남편의 이마에 사정없이 꽂히는 것이였다. 량씨는 갑자기 코안이 간질해나서 미처 얼굴을 뒤로 돌릴새도 없이 반쯤 상을 마주한채 쿡! 기침을 뱉고 말았었다. 급히 막느라고 한 터실터실한 손가락 사이로 누런 가래침이 엉킨 밥알들이 비죽비죽 나와 있었다.

밍이보다작은광따의딸레미쫸이는물고기를짚으려다가광경을보고찰칵! 수저를 내려 놓더니 발딱 일어서서 제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에이, 밥 맛 떨어지게 , 량밍! 내 컴퓨터 쓰고는 꺼라 그랬지! …” 목소리며어투며생김새까지어미를닮은아이였다. 그만 해라, 다른 반찬에다 더 먹지 그러니? 광따는 딸레미의 싸늘한 등에 대고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하며 허둥지둥 탁자위의 휴지를 뽑아 량씨에게 한 줌 안겨 주었다. 당신은? 원래 형제간일수록 돈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해야 서로 의도 상하지 않고 뒤탈도 없는 법인지 몰라요? 우리도 저번에 겪을대로 겪었잖아요? 광따의처가남편을째려보며총알같이내뱉었다. 그것은 모두 량씨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었다. 생각같아서는다시왕래하고싶지도않지만, 어쩌겠어요? 저 사람 하나밖에 없는 형젠데 그러니까, 이 번엔 따꺼 생각이 백번 맞구만요…” 광따의처는광따가지지고볶아낸상의요리를마주하고앉아찔끔찔끔맛만보네하다가말없이수걱수걱밥술을뜨고있던밍이를건너다보았었다. 밍이야, 천천히 많이 먹어라. 이 반찬들도 짚지 그러니? 한창 클 땐데 얼마나 허할까? 밍이는친절한숙모의말에가타부타대답이없이입안가득밥알을씹으면서자기앞의돼지고기마늘쫑볶음을저가락짚었었다.

쯧쯧 애가저리붙임성이없다구요. 하루 종일 뭔 생각하는지 통 말이 없으니 답답해서 원, 나는 하느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제 집만 하겠어요? 나중에 섧은 소리나 안들을런지…” 량씨가막차를타기위해광따네집에서나올무렵, 광따의 처는 물걸레로 걸상아래며 거실바닥 등 시형이 지나간 동선을 따라 다니며 바지런히 닦아대다가 걸레를 든채 현관까지 나왔었다.

광따가형님을만류하였다. 어쩌다가오셨는데하루자고가시쥬. 량씨는머리를완고하게흔들었다. 아녀. 그 사람 혼자 있는디. 광따는처의눈이할기죽거리려는것을보고도한마디덧붙였다. 그럼형님, 다음에는 따쏘우랑 꼭 같이 오슈. 광따의처는말을듣고더이상참지못하겠는지화장실로들어가걸레를촤락촤락씻어대였다. 내가못살아. 이 집에 어떻게 그런 여자까지 들인다고…”

량씨는문을열고나가려다가돌아서서광따의뒤에서있는밍이를쳐다보았다. 철이 들면서부터 제 어미를 도와 군불을 때고 물을 길어오고, 방과때마다 부실한 아버지를 거들어 밭일을 하거나 소를 먹이던 착하고 든든한 아들이였다. 밍이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듯이 묵묵히 서있었다. 텁숙하던 머리는 도시 애들처럼 세련되고 깎았고 불과 석달전까지 없었던 여드름이 나서 갑자기 훌쩍 성숙된것처럼 보였다. 워낙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였지만 밝고 구김살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던 아이였는데 그날 광따네 집에서 본 아들은 흡사 다른 집 아이랑 바꿔치기를 당한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광따네구석구석에서피여오르고있는향내때문이였을까. 아니면 광따의 처가 화장실까지 뿌려놓은 향수냄새탓이였을까. 잠깐 동안 앉아있는 사이 량씨는 머리속이 혼탁해지고 있었다. 밍이도 량씨를 내다보고 있었다. 자기를 데리러 온 삼촌의 제다가 동네어귀까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밍이는 안해의 포옹과 량씨의 쓰다듬을 어린애처럼 바라고 있었더랬다. 또 올께이. 삼촌 숙모 말 잘 듣고 있어라이. 하고 량씨가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는데 그 날의 밍이 눈에는 웬일인지 그 전 같은 순수한 아쉬움이 보이지 않았었다. 량씨는 등뒤에서 육중한 현관문이 쿵! 닫기는 소리를 들으며 기우뚱 기우뚱 계단을 내려갔었다. 그건 뭔가. 하마트면 계단을 헛짚을뻔 하여 량씨는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에 어지럽던 머리가 약간 개이는것 같았다. 그래, 밍이 눈에 들어있던것이 량씨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였단 말인가?

때문에저녁남자의전화를받고나서도량씨는금방광따에게전화를넣지못했었다. 안해의 몸은 쉽게 부끄러움을 버리고 뜨겁게 달아 올랐었다. 매번 숨가쁘게 헐떡이는 안해의 몸을 타고 앉아 땀자루를 흘릴 때면 량씨는 다음에, 그 다음엔 노총각 송씨가 얘기하던 그 기구라는것을사볼까하는생각을끊임없이떠올리군하였었다.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지만 안해 역시 그런 상상속에서 매번 량씨와의 정사를 아쉽게 마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십줄이넘어가면서부터무력한왼쪽다리는근육이많이빠져나가며점점가늘어갔었다. 그러나 늘씬하게 쭉 뻗은 안해의 두 다리는 아직도 탄력이 남아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신 날 밤이면 량씨는 가끔 안해의 맨 다리를 그러안고 잠을 잤었다. 안해의 넙적다리 안쪽에는 담배불로 지진 흔적이 두 개 있었고, 엉덩이 살과 오른 쪽 유방아래에는 희미한 인위의 흉터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량씨는 동네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그 흔적들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서 만약 그 것들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과연 안해를 지금처럼 사랑할수 있었을까 생각하군 하였었다.

안해도그렇게생각하는지는모를일이였다. 안해하고는 그런 진지하고 깊은 속얘기들을 해본 기억이 없었다. 안해는 조용하고 알뜰하게 일상을 살다가도 자주 상상속의 세계에로 끌려가군 하였었다. 그런 순간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면 안해는 이 현실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간에 모두 순식간에 감감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녀는 상상의 세계에서 보고 듣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보이군 했었는데 거의 고정불변의 테마가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자기 베개 밑에 감추는 행위였다. 아무도 그녀의 세계에 들어가보지 못했으므로 그녀가 왜, 무엇을 보고 그렇게 하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동네사람들은그녀의그런행위가터지기만하면무조건사람을띄워일밭에나간량씨를불러왔었다. 량씨가 허둥지둥 문간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해는 비로소 칼을 사람들에게 내주고 자기 베개에 누워 잠이 들수가 있었다.

안해에대한소문은일찍부터여러동네에여러버전으로많이나있었는데량씨가안해를처음집으로데리고오던, 먼저 결혼했던 광따와 그의 처는 가게 일이 바빠서 와보지 못했었다. 그 후 얼마 뒤, 광따 혼자서 선물이랍시고 스테인리스 냄비와 화장품 세트를 들고 찾아 온것이 전부, 광따의 처는 이 날 이제껏 동갑내기 손위 동서네 집으로 놀러온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집에서살던아버지가돌아가셨을, 두 형제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초상난 시댁에서 두 여자가 마주친 일이 있었다. 연한 꽃무늬 정장에다 고상하게 까만 구두를 받쳐 신은 광따의 처가 말이야바른대로, 따꺼네는 곁에 살았다 뿐이지 노인네 생활비는 다 우리가 댄게 아니냐 칼칼하게언성을높였고, 색바랜 치마바지에 밍이의 점퍼를 걸친 량씨의 처는 까만 눈섭을 쪼프리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었다.

광따의처는점심거리로량씨의안해가만든노란옥수수꿔어테(锅贴)거들떠보지도않았다. 사실 온 동네에서 이렇게 구수한 꿔어테를 부칠줄 아는 아낙은 량씨 안해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것은 량씨가 옥수수 대궁이를 때주고 안해가 커다란 가마솥 안벽에다 주먹만큼 큰 옥수수반죽을 찰싹찰싹 붙여서 노릇노릇하게 구워낸것이였다. 배살이 붙어서 정장치마위가 불룩해진 광따의 처는 량씨가 떠준 물도 마시지 않았다. 물은 까만 가죽물통에서 떠온것이였는데 늙은 소 누렁이도 그 물통안의 물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광따의처가어렵사리시골동네로행차온것은노인네가남겨놓은초가집과세간일부와통장, 그리고 넉무팔푼의 옥수수밭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광따는 제 처의 눈치만 살피면서 가타부타 말없이 담배만 뻐끔뻐끔 태웠고, 량씨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제수씨의 정확한 유산 분할 계산방식에 대해 무지막지하게 무시해버렸었다. 법이이렇고저렇고하는거이는모른다. 노인네 생전에 말한대로 옥수수밭은 내가 가진다. 의견이 있어두 어쩔수 없다.

일이있은한동안형제는서로래왕이끊겼었다. 밍이 학교가 문제 되는 바람에 량씨가 하는수 없이 먼저 동생한테 부지런히 전화를 넣기 시작하였고, 형제의 옛정을 생각해야 하는 광따로서도 더 이상 나 몰라라 할수가 없어 나선것이였다.

그런일련의연유들때문에량씨는광따와그의처를떠올리기만하면괜히속이체한것처럼불편해나군하였었다. 안해가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잠이 든 다음에야 량씨는 팬티를 입고 일어나 낡은 휴대폰으로 광따한테 전화를 넣었었다. 그래, 나다. 우리 밍이 잘 있냐? 뭔 일 없고?  처가바로곁에있는지광따의목소리는자제하는듯낮게들리였었다. 그럼여, 잘 있져. 별일이야 있겠슈 잠깐부시럭거리며끼익ㅡ닫는소리가들리더니베란다로나갔는지광따의목소리가높아졌다. 그러세여형님? 뭔 일 있으세여? 량씨도전화를들고잠든안해의곁을떠나부엌께로나갔었다.

, 밍이 담임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구. 먼 놈에 학습태도가 안 좋니, 학적부가 문제있니 하맨서 내일 한 번 왔다 가라네. 기래, 니가 보기에두 밍이 태도가 좀 그러냐? 창문바깥에서칠흙같은어둠이량씨네집을숨막힐듯감싸안고있었다. 집 뒤에 있던 몇 그루의 백양나무들이 우수수 ㅡ 어두운 밤공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니까밍이가여, 글씨, 전에는 걔가 안 기랬던것 같었는디…” 밍이얘기가나오자광따가갑자기꺽꺽거리며말문을열기힘들어하였었다. 뉘 집 거위를 눈독들였는지 삵쾡이가 아츠랗게 우는 소리도 들렸었다. 혀봐. 말을 혀야 내가 알지. 량씨는광따앞에서형님의틀거지를차리며의젓한듯목소리를눅잦혔지만마음속에서는동안단단히쌓았던어떤성곽이이제금이가고부스러떨어져나가는것처럼불안했었다.

광따의얘기를대충정리하면이러했다. 사춘기에 들어선데가가 갑자기 환경이 바뀌여진 탓일수 있을것 같다. 애가 처음에는 순순히 공부만 하고 말도 잘 듣고 심부름도 눈치껏 해주는 편이더니, 점점 책을 들고 있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식구들에게 문안도 건성, 어디 감히 숙모 묻는 말을 씹는 경우도 가끔 있을뿐 아니라 언젠가는 쫸이랑 대판 다툰적도 있을 정도로 과격해졌다 는것 이였다. 이런하기정말그런데여, …” 하고광따가팬티바람으로나가부들부들떨며저녁바람을맞고있는량씨한테말했었다. 우리안방화장대위에두었던돈이여러없어졌거든여. 10원짜리 20원짜리들이라 많은 돈은 아닌데, 그래두 이건 경우가 다른 일이라 어르고 달래고 다 해보았는데두 눈 하나 깜짝 않고 딱 잡아떼더라구여. 그래뵈도 밍이 걔, 의외로 독한 구석이 있어여... 솔직히 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이런형님한테얘기해야허나말아야허나걱정허구있었쥬…”

오전수업이끝나는하학종이골짜기의메아리처럼길게울리고있었다. 종소리는 마법사의 주사를 받은 주문마냥 량씨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저그중간쪽에있는하얀색건물이요. 대문으로 들어가서 복도를 따라 왼편으로 굽어들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을 거요. 마선생님은 수학 1조 사무실이지 아마. 늙은수위가생각보다자상하게가르쳐준다. 량씨는 푹신한 인조잔디의 운동장을 기우뚱 기우뚱 가로 질러서 맞은 켠 건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건물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밍이의 담임은 밍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줄 것인가. 대문을 빠져 나가는 아이들 곁으로 커다란 광고 글귀를 써넣은 콘테이너차 하나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과연 무엇이 보입니까?> 어떤 불길한 예감이 스물스물 량씨의 뒤덜미를 기여 오른다. 머리속이 이상하게 조금씩 흐리멍텅해가고 있는것 같다.

글쎄요, 제가 이 반을 맡은지 이제 한 학기뿐이 안되였으니까, 성급히 결단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혹시부모님은선생님들한테서무슨소리를들은적이없었나요? 음, 예를 들면 거짓말 같은 거요 밍이의담임은전날통화에서일변심각하게어조를낮췄다가다시허허웃으며그러나조사해보면그리문제가아닐수도있다고분위기를은근슬쩍풀어주군하였었다. 그래서말인데요, 아마 밍이가 학적부 얘기를 부모님께 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걸해결하자면 일단, 내일 오실때 비상금을 챙겨오시는게 좋을겁니다. 사오백이나 칠팔백, 뭐 많으면 많을수록 든든하긴 하다만, 어쩌겠습니까? 형편대로 해야죠. 숨박꼭질이나하듯안개속을누비던남자의종잡을수없는말들은결국돈을가져오라는내용으로끝나버렸었다.

밍이의입학수속에대해서깜깜이였던량씨는광따한테서대강이나마귀동냥을싶었지만이내광따의전화속에서처의새된소리가들리는바람에속시원히물어볼새가없어졌다. 수속은끝났을텐데돈여? 농촌호구라서 다른 수속이 또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혹시…” 거기까지하다가광따는이내처한테알았어, 금방 들어간다고, 가! 소리 질렀다. 밍이도매일타고다니는데, 시외버스역전에서도 바로 탈수 있어여.  230번. 조양공원 역에서 내리슈. 뭔 일인지는 가보믄 알겄지…”

유리대문으로들어가길다란복도를따라왼편으로걸어가다가량씨는수위가알려준계단을만나올라갔다. 2층 복도 남쪽켠에 일렬로 죽 늘어있는 사무실 패말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가 량씨는 마선생님이 있다는 수학1조 패말의 문앞에 멈춰섰다. 경찰서에 자수하러 온 범인처럼 가슴이 두근닥질 한다.  똑똑똑 1학년 7반 마선생님 여그 계신가유?

허허허하고사무실안에서어떤남자의익숙한웃음소리가들리고있었다. 짧게 머리를 커트한 젊은 여자 선생님이 벌컥 문을 열어 주었다. 1학년 7반 담임 마선상님이 여그 계시우? 중키에약간몸이남자의뒤모습이귀퉁이쪽사무책상앞에서보이고있었다. 대나무잎 무늬의 셔츠를 시원하게 받쳐입은 남자는 누군가와 기분좋게 통화하는 중이였다. 애들이그렇지요, 걱정마세요 어머님, 제가 잘 돌보고 있으니까 하하하, 그건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인데요 뭐. 꼭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여자선생님의싸인을받고나서야남자는핸드폰을든채금테의안경다리를코등으로연신올리추면서량씨를향해문께로다가왔다. 량씨는 이처럼 지적이고 고상한 지식인을 마주하고, 갑자기 어찌할바가 생각나지 않아 그만 조공을 드리는 대신마냥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누구 혹시…” 남자는량씨의남루한행색이며해볕에그슬린주름진피부와사선으로내려가있는어깨며를빠른속도로훑어보면서깍듯이맞인사를하였다. , 지가 밍이 애비지유. 량밍. 남자는상상속의량밍아버지와많이달랐던지어딘가난감해하며슬그머니량씨의손을놓았다. 그렇구나, 량밍이가 농촌에서 온 애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들이모두나가고사무실안에서남자는량씨를마주하고앉아, 그러나 머리가 아프다는듯 이마를 찌프리며 뭔가를 골똘히 궁리하고 있었다. 량씨는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면서 용기 내여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밍이가속을많이태우는갑죠? 공부를 영 잘 안하나유? 남자는량씨의지대한관심사에는그다지흥미가없다는듯가벼운일소로대충무마해버렸다. 공부야이제 1학년이니까 너무 급한건 아니지요 과분할정도로장난이심한것도아니고 목구멍까지가득막혔던답답한것들이약간내려가는것같았다. 그렇다면 또 뭐가 그리 문제란 말인가. 아직 펴지지 않은 남자의 이마살을 걱정스레 올려 보다가 량씨는 한 번 더 물었다. 그럼학적부가문젠가유? 농촌호구라서?

말에남자는마침내뭔가결단을듯한얼굴을들더니량씨를쳐다보았다. 그렇. 그래서, 어제 얘기 드렸던 돈은 가지고 오셨나요? 남자의말에의하면밍이의경우호구소재지의구역을옮겨입학하였기때문에다른애들보다필요한서류가있으며저번주까지서류를작성해오라고밍이한테통지했건만아무소식이없는것으로보아아마밍이가전해주지않았을것으로짐작했다고하였다. 기일이 지나면 학적부 작성이 끝나서 개인적으로 다시 재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텐데, 만에 하나 그렇게 될 경우 대학시험은 물론 볼 자격도 없고 3년동안 힘들게 공부하고도 결국 고중 졸업장 하나 얻을수 없는 신세가 될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차후 인생이 걸린 이 중요한 문제앞에서 밍이 녀석은 될대로 되라, 어차피 대학은 안갈거니까. 라는 배심으로 경고를 무시하더라고 하였다.

남자는쯤에서말을잠깐멈추고노란금테안경뒤로량씨의얼빠진표정을면밀히살피는것이였다. 해서, 제가 학교는 계속 보내실거냐고 물어본겁니다. 부모님의 의향도 밍이랑 같은건지…” 량씨의약간짧은다리가덜덜떨리기시작하였다. 헛 꿈을 꾸다 깬 사람처럼 량씨는 눈을 퀭하니 뜨고 남자를 쳐다 보았다. 밍이가그랬다구유? 어차피 안갈꺼라구? 놈이어떻게그딴말을 우리가고상을하며살겠어유? 다 그 놈 하나 대학에 보낼려구 이러는게 아니겠어유? 같지도않는소릴 뭐가없으믄안된다구유? 해야 지유! 빨리 해야 지유…” 량씨의두터운입술사이로흥분한침방울들이마구튕겨나왔다. 량씨가 마침내 사태의 엄중성을 깨닫고 마음이 다급해 지는것을 보고, 남자는 오히려 이마살을 펴고 침착한 모습이 되였다.

그렇군요, 제 짐작이 맞았군요. 근데 이 녀석, 그렇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재촉했는데도 연락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허참, 오후 자습시간도 가끔 빼먹고, 잔머리 굴려서 거짓말이나 하고 량씨는거기까지듣고이상앉아있을수가없어서벌떡일어나버렸다. 놈을당장! 선상님, 내 이 놈한테 단단히 물어봐야 갔시유, 이 몹쓸 놈, 시방 교실에 있겠지유? 남자는기대이상으로화에사로잡힌량씨를보고잠깐당황하는듯하다가이내그의손을잡고만류하였다. 너무흥분하지는마십시요, 요즘 애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사춘기라 더 할거예요, 제가 나중에 잘 타일러보겠습니다, 그 것보다 먼저 학적부를 해결하셔야죠  

량씨는계단란간을의지하여손으로무력한다리를짚고서서오가고있는학생들을물끄러미바라보았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소란스럽게 지나가는 남자아이들이 한무리 보였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밍이같았다. 똑같은 체육복을 입고 굵어진 목소리로 떠들던 아이들은 량씨 앞을 지나면서 흘끔흘끔 돌아 보았다.

여기서기다리세요, 저 혼자 가볼게요. 사무실을나선남자는량씨더러계단이시작되는 2층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량씨는 허리춤 깊숙이 쑤셔 넣었던 까만 봉다리를 풀어 때국에 절은 빨간 지페 네장을 꺼냈다. 학적부를 관리한다는 그 총무라는 작자한테 돈을 찔러주며 구슬려 보겠다는것이 남자의 계획이였었다. 남자는 빨간 지페가 겨우 넉장뿐임을 확인하고 나서 잠깐 말이 없었다. 농촌학생을 위해 이런 번거로움을 무릅쓰는 도시의 선생님께 너무 죄송스러워서 량씨는 연신 허리를 굽혔었다. 선상님, 난 아무것두 모르니께 어쩌겠슈? 그저 선상님이 애써주슈. 글쎄사백이라, 이거 가지고 될래나 …” 량씨가기어이손안에쥐여주는지페를들고남자는머리를절레절레흔들다가하는수없이계단을올라갔었다.

서로의어깨를쥐여박으며장난질을하던남자아이하나가량씨를밀쳤다. 란간을 붙잡고 서있던 량씨는 평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어, 죄송해요! 남자아이는 자기 친구에게나 하듯 량씨한테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는 다시 아이들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수염이 거뭇하게 나기 시작한 아이였다. 요새 아이들은 옛날 같지 않은데 밍이는 그 아이들한테서 나쁜 짓을 배운게 아닐거냐 던 광따의 말이 생각났다. 다툼질에 건성건성에 거짓말에 도둑까지 1학년 7반이라고 했으니께, 한층 한층 뒤져서 다 찾아 볼끼다, 어디 찾기만 해바라 량씨는입술을사려물고계단란간을잡아당기며힘을써서층계를올랐다. 몇 계단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팔 근육이 저려났다.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하나, 하나 더, 기우뚱 기우뚱 힘겹게 올라가는 량씨의 뒤에서 누군가 살짝 팔꿈치를 부축했다. 아버지! 웬 일루 여기를 건물모든  아이들과똑같은체육복을입은, 밍이였다.

녀석, 여기 있었구나!  마침머리위로부터쿵쿵발걸음소리가들리더니녀석의담임이내려오고있었다. 심드렁한 목소리로 어렵긴했다만, 이제 다 …”하고말하다가남자는곁에서있던밍이를보고나머지말들을꿀꺽삼켜버렸다.그래, 선상님도 왔으니 차라리 잘 됐다! 내 물어보자, 너 워디서 이리저리 거짓말허는 재주 배웠냐? 학적부 얘기를 허라고 선상님이 몇 번이나 말했다며? 대학 안갈꺼라는 말은 누가 헌기고?!…” 계단을오른데다가화까지뻗치고있어서량씨는숨쉬기가가빠졌다.

밍이는약간뜨아한표정으로자기의담임을쳐다보았다. 학적부요? 대학이요? 갑자기 무슨 사건들이 생각키웠던지 밍이는 말을멈추고다시 차거운 얼굴로 돌아갔다. 량씨가 여태 적이 없었던 줄기 독기 같은 것이 아이의 눈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니요! 거짓말 한적 없어요! 내가 말이 아니예요!

뭐여? 이 놈이 기래두? 선상님이여그일케서있는데두아니라고잡아? ! 이 것을 그냥 량씨의눈에서순간번개불이번쩍일었다. 아무리 따져도 눈 하나 깜짝 않더라는 광따의 말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이 정도라면 광따네 안방의 돈들도 밍이의 짓일게 분명했다. 밍이가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량씨는 자기 보다 머리 하나는 공히 더 큰 아들에게 바람처럼 달려들어 귀썀을 매우 날려댔다. 내가너를글케가르쳤더냐?놈에자식! 내가, 너 어미가 이따위로 살믄서 그저 너 이 놈 하나 올바르게 크는거이 보구 싶었는데, 망할 놈의 자식!

삽시간에밍이의얼굴에는벌건손자국이나고말았다. 싸늘한 웃음 같은 것이 그 아이의 얼굴위를 엷게 스쳐 지났다. 때려요, 뭐 어쨌다고? 올바르게 키워요? 당신 같은 사람이? 량씨는급기야분수처럼치미는분노에눈이돌아가고말았다. 이 자식이? 뭐가 어쩌고 어째?! 수탉의모가지를잡아비틀때처럼량씨는갈퀴같은손에전신의힘을모아밍이한테달려들었다. 그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계단을오르내리던아이들이둥그렇게그들주위에모여들기시작하였다. 사태가 크게 번져지자 남자는 황망히 두 부자 사이에 끼여들어 사력을 다해 량씨의 손을 풀어 놓았다. 진정! 진정하세요! 여기는 학굡니다! 남자는 량씨를 붙잡아 한 쪽에 세워 놓고, 될수록 목소리를 자제하며 밍이를 호되게 닦아 세웠다. 거짓말을했으면인정해! 인정하고 뉘우치면 되는거지. 그렇게 우기면 어떻게 고치겠니?! 학적부 문제는 다행이 아버님이 제때 오셔서 넘어갔다만, 거짓말하는 버릇은 꼭 고쳐야 한다! 그게 작은 문제가 아니야, 네 일생의 품행에 관한 문제라고~! 사람이란 무엇보다 우선 정직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거다! 알아 들었나? 량밍!!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  

장사꾼들이싸구려를웨치는소리, 손님들이 흥정하는 소리, 드르륵 화물박스 리어카가 끌려 가는 소리, 오토바이며 짐차들의 경적소리로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붐비는 사람들속에서도 유난히 올곧은 어깨의 밍이가 앞서 걷고 있다. 량씨는 허기진 배를 붙안고 뒤뚱뒤뚱 따라가며 손으로 연신 짧은 다리의 무릎을 짚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데다가 예상에도 없던 화를 내고 용까지 쓰다보니 창자가 헹하니 비여 있었다.

항주만두가게앞에서밍이가걸음을멈추고피끗량씨를돌아본다. 마선생님이 밍을 야단치고 주위에 모인 아이들을 돌려보낸 뒤 량씨는 흥분이 차차 가라앉았다. 선생님께 삿대질을 당하며 엄한 꾸중을 듣고 있던 밍이, 둥그렇게 모여 그런 밍이와 량씨의 꼬락서니를 구경하던 아이들, 량씨는 그 순간 홀로 솟은 산같은 아들만의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어디만두집이라도없냐? 대충 먹고 가자. 마디인사치례가끝나고마씨가밍이를교실로올려보내려할때, 무뚝뚝한 목소리로 량씨는 아들을 불렀었다.

항주만두집들이대개그러하듯가게안은비좁았다. 량씨는 주방하고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밍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량씨가 손짓을 하여 마주 앉긴 하였다만 아비의 얼굴은 쳐다 보지도 않았다. 밍이의 볼살을 후려치던 손바닥에는 아직 그 아이의 야들야들한 피부촉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말벌한테 쏘인것 처럼 벌겋게 부어있는 아들의 한 쪽 얼굴은 량씨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엉덩이는 여러번 때려 보았지만 얼굴에 손을 대기는 처음이였다. 밍이도 다른 집 아이들보다 철이 일찍 들어서 귀썀맞을 짓은 종래로 하지 않았었다.

량씨는돼지고기속만두를통이나시키고죽도그릇시켰다. 만두는 작고도 뜨거웠다. 속을 들여다 볼수 없는 하얀 만두들은 갈색의 대나무 찜통 안에서 평화롭게 모락모락 김을 뿜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열정적이고 책임감있는 선생님과 버릇없고 과격하게 변해버린 밍이, 그리고 광따네 안방안의 용돈들 그러나량씨는마를떠나고학교대문을나서서밍이와둘이있게되자, 갑자기 어떤 지독한 최면에서 소스라치게 깨여나는것 같았다. 저번 겨울 광따네 집에서 그랬던것 처럼. 량씨는 가게 주인을 불러서 한 냥짜리 얼궈터우를 시켜 마개를 땄다.

이런느낌은아주오래, 20년전이나 30년전에도 느껴본적이 있었지 않은가. 너냐? 거짓말한 사람이 너냐? 량씨의목소리가이제많이누그러져있음을알아듣고밍이가이마를들어아비의눈을바라다보았다. 진한 눈섭아래 곧게 뻗은 코날, 속눈섭이 까만 쌍겹눈과 갸름한 턱, 밍이는 신기하리만치 제 어미를 똑 닮아있었다. 아니, 지금 이 아이가 바로 안해가 량씨한테 시집오던 열아홉이 아닌가.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저한테 이제껏 정말만 말했었나요? 밍이가되물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량씨의 성곽 어디선가 우지끈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어떤애가, 아니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나는 아버지와 엄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밍이는머리를돌리고열려있는바깥으로쉴새없이가고오는사람들을쳐다보았다. 불신과 의혹에 흔들리는 그 아이의 눈에는 바깥 풍경이 과연 무엇으로 보이고 있을까. 그래서? 하고량씨는작은술병을입에대고머리를뒤로젖히며꿀꺽모금배갈을들이켰다. , 넌 어떻게 생각허냐?

230번 버스, 조양공원 맞은 켠 역으로 두 부자는 좀 전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었다. 돼지고기속이 듬뿍 찬 하얀 만두로 든든히 배를 채운 량씨가 밍이를 앞서 갔다. 손으로 부실한 쪽의 다리를 짚을 때마다 몸 전체가 우습깡스럽게 기울고 있었다. 바로 섰다 쑥 기울며 비뚤어지고, 다시 바로 서서 한발 내딛는 량씨의 걸음자세는 시골의 수도펌프같이 절주 있었다.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노란 파마머리를 위로 높게 틀어올린, 긴 가짜 속눈섭을 깜빡거리며 걸어오던 아가씨가 량씨를 빤히 쳐다 보았다. 겨우 열여섯이나 열일곱정도 되였을, 직업이 의심스러운 의상의 아가씨다. 량씨는 큰 도시 유흥가에서 2년간 밥벌이를 했다던 왕년의 안해같을 어린 아가씨를 못본척 지나쳐 간다. 첫 번째 발작이 있고 나서 어린 안해는 고향동네로 돌아왔으며 그로부터 1년 뒤 량씨와 살림을 합쳤다. 안해는 그 후 20년의 세월들을 살면서 다시 이 도시에 와본적이 없었다.

30년전, 동네에는 여러 버전의 소문이 나돌았었지. 뭐 지금도 그 소문들은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누군가의 술잔이나 찻잔 밑바닥에 가라앉아 다리 쉼을 하고 있겠지만. 어디 한 번 맞춰보지 않으련? 뭐가 진짜인지? 량씨는잠깐멈춰서서바싹자기뒤를따라오는아들을돌아본다.

번째소문; 어떤 팔자 사납고 지독한 계집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계부한테 재가한 엄마랑 말 할줄도 옷 입을줄도 모르는 멍청한 여동생이 있었지. 어느날 집을 나가 강가에서 장난하던 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계집아이는 현장에서 도망가고 말았대, 동생의 시체가 물 위에 떠오를 때까지.

번째소문, 어떤 멍청하고 지저분한 계집이 있었다. 계집은 타고난 화냥년이라서 젖탱이가 튀여나올때부터 벌써 엄마의 남자랑 이러고 저러고 하는 사이였대. 몇 살을 더 먹고 나서 젖탱이며 엉덩이가 더 커지니까 그 늙은 남자는 성에 차지 않은지 도시로 들어갔대. 돈도 벌고 화냥도 하고

번째소문, 가난뱅이에 못생기고 나이 많은 절름발이 총각이 있었다. 그 놈은 몸이 불구라서 성격이 괴퍅하고 무식하고 억지를 잘 쓰는데다가 부모형제 모르는 욕심쟁이였다. 지참금이 없어 여느 색시랑 정상적으로 결혼할수 없는 그 놈은 윗동네 정신이 들락거리는 계집을 밤마다 몰래 찾아간다. 배가 부르는 바람에 하는수 없이 놈을 따라 간 계집은 놈보다 아홉살이나 어렸는데, 정신이 이상해지기전에는 도시에서 반반한 얼굴로 요상한 일을 하며 살던 년이란다

번째

물론량씨는밍이한테그런쓸데없는풍문들을일일이말해주지않았다. 밍이는 아직 어렸다. 밍이가 그 풍문을 제 귀로 모두 들었다면 부모에 대해 과연 어떤 상상을 할것인가. 당년의 량씨도 그 풍문을 들을때마다 독버섯을 먹은것 처럼 머리가 어지럽지 않았던가. 지금 량씨는 그 것들이 모두 진실이 아니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 몇 가지 사실은 확실히 발생했던 것들이기도 하였다. 동생의 죽음, 계부와의 관계, 유흥가 생활, 발작하기 시작한 정신착란증 , 정신이상의 계집을 임신시킨 절름발이 노총각과 동생의 덕을 그렇게 보고서도 옥수수밭 때문에 발길을 끊은 형 같은 것들도 말이다.

해빛이한창따갑다. 230번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온다. 광따삼촌네에는들르지않을거예요? 하고밍이가묻는다. 아니, 그냥 갈런다. 너 에미는 나 없으믄 안댄다. 량씨는버스정류장의간이의자에걸터앉는다. 마침 혼자 학교를 찾아간 형이 마음 쓰였던지 광따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형님, 입학수속을 해주던 부교장한테 물어봤는데유, 수속엔 문제 없대여…” 량씨는전화통을잡고멍하니듣고만있는다. 요즘학교선생들이얼마나어두운데유, 우리 쫸이네 선생도 보면 어휴 혹시…” 량씨는거기까지듣고어험어험기침을심하게깇었다. 알았어유형님, 그만 할게여. 우리 집에 들렀다나 가슈…” 광따는량씨가들른다면이번에는돼지다리찜을해주겠다고하였다. , 형님이 젤 좋아하시는거 잖아여, 어렸을 때…”

량씨는날이갈수록비실비실해가고있는가느다란다리를내려다보았다. 고열이 왔을때 미처 치료하지 못해서인지 중증 소아마비 후유증이 어린 량씨를 찾아왔고 다리 때문에 농사일이 훨씬 더 힘들게 느껴지는 량씨는 가난한 아버지를 졸라서 중학이며 고중을 보내달라고 떼를 부린 적이 있었다. 도시에 나가 직장이라도 찾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밥을 벌어 먹을 셈으로. 한 아이의 비용밖에 댈수 없다던 아버지는 며칠 고심한 끝에 결국 량씨가 아니라 광따에게 학비를 맞춰 주었고 그 날 저녁 손수 량씨에게 돼지다리 찜을 고아 주었었다.

까만간장에졸인돼지다리는얼마나구수했고얼마나살이쪘었던가. 아버지가 광따한테도 짚어 주었지만 아무래도 량씨가 더 많이 먹었었다. 광따도 여직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광따는 지금 그 처나 딸레미 쫸이 때문에 옛날 맛이 나도록 돼지다리를 쫀득하게 찔수 있겠는지 알수 없었다. 광따네 집에는 제 아들도 남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향내들이 너무 진했으니까.

빨간버스하나가멀리서오고있었다. 대 여섯살쯤 보이는 계집아이가 아이스크림 을 먹다 말고 정류장에 있는 쓰레기통안에 버린다. 계집아이는 자기가 입은 하얀 꽃치마에 구정물이라도 튕길까봐 쓰레기통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던져넣었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쓰레기통은 주위 깔끔하고 문명스러운 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더럽다. 뚜껑이 부서져 온갖 쓰레기가 배를 갈려 드러난 짐승의 내장처럼 훤히 들여다 보였으므로.

이상한것은, 산산이 부서져 간들간들 겨우 한 조각 남아있는 그 뚜껑 위에 어떤 자그마한 쥐 한마리가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들고 서있는 것이였다. 발레라도 추듯이 뒤발 하나를 추켜든채 장난감처럼 꼼짝않고 있었지만, 배가죽이 불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쥐였다. 셀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을 지나쳐가고 쓰레기통 곁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 이상한 쥐는 보지 않았다.

버스가거의정류장에들어오는것을보고량씨는간이의자에서주춤일어난다.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서있는 쥐는 더 잘 보인다. 아니, 혹시 량씨의 눈에만 보이는게 아닐까? 세상이 그렇지 않던가. 사람들은 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군 하였으니까.

230번 버스였다. 아버지, 하고 밍이가 량씨를 귀띔한다. 응, 그려. 나 간다. 잘 있어. 밍이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로 오르던 량씨는 본능적으로 이상한 쥐쪽을 흘끔거린다. 참말로 아무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겐가? 혹시 량씨 자신도 안해처럼 상상속의 세계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밍이가웃었다.아버지도보셨어요? 량씨를부축하여버스로올린밍이는아버지의시선을따라쓰레기통쪽을피끗돌아보았다. 신기하죠? 난, 나만 본줄 알았는데 도시에들어와공부를한지일년만에, 처음으로 밍이는 자기가 태여나 자란 고향에서처럼 맑게 웃었다.

                                                  2014.  3.

                                                  장춘 개선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