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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의 아리랑 로드를 가다 23]  황화강 72열사 능원

황화강 72열사능원은 항일유적지“아리랑 로드를 가다”답사 마지막 코스이었다. 황화강 72열사능원은 광저우시 선열로先烈路 공원에 위치하여 있고 부지면적은 16만평방메터이다. 우리 일행은 12시 30분에 공원 앞에 도착하였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넓고 양 옆에 검푸른 나무들이 우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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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릉원으로 가는 길


공원 안에는 황화강 열사들의 영생함을 상징하기 위하여 특별히 황黄자 들어가는 꽃 들을 많이 심었다.   황소신黄素馨,황술관黄穗冠,함박꽃黄芍药,황국黄菊,황매黄梅,황화黄花등 4계절 노란 꽃들이 끓임없이 열사들과 함께 꽃핀다고 한다. 희생된 선열들의 정신이 불멸하다는 의미이다.


정문에서 걸어 굽어 들면 황화강열사능원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 옆에는 수염이 길게 늘어선 수염나무가 우리를 반겼다. 능원 가까이 가니 키작은 파란 향나무 사이사이에 노란 국화꽃과 연분홍 국화꽃이 소담히 피어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1911년 4월 27일 (음력 3월 29일) 손중산이 이끄는 동맹회에서 청정부를 뒤엎기 위해 광주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 실패하였다. 그번 무장봉기에100명이 희생되었다. 동맹회 회원 반달휘潘达徽는 생명을 무릅쓰고 72명 희생된 열사들을 황화강에 묻었다. 1918년 애국인사와 화교들의 기부금으로 열사능원이 건립되었다. 이 릉원은 중국전통특색과 애급 및 서방의 고전건축풍격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한 열사능원이라고 한다.


당시 72명 외에 14명이 더 희생되었으며 이들의 이름은 “광주신해 3월 29일혁명가”비석의 후면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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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능원 정문


노신은 “황화절 잡감” 글에서


“당시에는 비록 황화강 사건은 패배하였지만 10월에 무창봉기가 있었고 이듬해에 중화민국이 창건되었다. 이리하여 그 실패한 전사들이 당시에는 성공한 혁명의 선구자로 되었으며 비장한 연극의 막이 내리자마자 또 하나의 대단원극이 종막으로 등장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경하할만한 일이다. 황화절을 기념할 때면 이러한 사실을 엿볼수 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썼다.(주해 1)


황화강 사건은 비록 실패했지만 무창봉기의 밑거름이 되어 청나라를 멸망한 동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싶다. 다시말하면 신해혁명의 발화점이 되었다.


박국장의 안내에 따르면 공원 곳곳에 크고 작은 묘지가 있고 비석이 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묘지의 큰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각 국에서 추도의 뜻으로 지원한 대리석들이 하나의 탑을 이룬 형태로 지어져 있다. 대표로 비문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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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방记功坊


기공방 记功坊

1921년 (민국10년)준공建成

기공방에 손중산이 몸에 새긴, 손으로 쓴 “호연지기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浩气长存), 정면은 장병린张炳麟이 쓴 “민국을 창설한 72열사기공방”이라고 새겼다. 위에는 앞뒤로 각각 72개 청석으로 겹쳐72명 열사를 상징한다. 돌면에는 각각 당시 국민당해외각지지지부의 이름과 개인의 이름을 새겼다. 그들이 능원을 세우는데 기부한 공과 “헌석”“献石”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가장 위에는 자유의 여신을 상징하였다.


황화강 72열사, 아니, 어쩌면 더 많은 무명용사들이 부패한 청나라 정부를 뒤엎기 위해 싸우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애국선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무능한 청나라는 무너졌고 전례 없었던 중화민국이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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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강 72열사능원


황화강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박국장이 황화강 72열사 능원은 한국 역사와 큰 연관은 없지만 김산, 양도부, 오성륜 등 광주봉기 실패후 참가자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화현으로 이동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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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영문판 표지.


“아리랑 평전”에 보면

장지락은 식량과 옷을 담은 륙색과 구급낭, 그리고 총신이 짧은 기병총을 들고 작열하는 포탄과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임시집결지인 72열사 공원으로 달리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물어보아 조선인 동지들을 찾으려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요행 오성륜을 만났다. (주해 2)

그때 김성숙도 장지락과 헤어진후 한달 뒤인 13일 정오에 72 열사 공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주해3)


황화강 72열사 능원은 김산 등 조선용사들의 피난처로 되었고 가끔은 모깃불을 피워놓고 앉아 담론을 즐겼다고도 한다. 아마 또 지치고 힘들 때 이곳에 잠들어 있는 영웅들한테 안위를 받고 기를 얻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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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의 아리랑 로드를 가다" 답사를 마치면서 단체 기념촬영.


지금은 사철 피는 황화, 고목식물들이 우거진 공원 안에 황화강 72열사들을 모시고 광주 시민들이 운동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쉼터로 되었다.


나는 오매불망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광동 지역 항일 유적지라 이번에 친히 와서 보니 좋았다. 이번 답사는 나한테 역사를 배우게 된 좋은 기회었고 잠자고 있었던 나를 깨워준 정말 가슴 벅찬 답사였다. (끝)


참고자료

주해 1:   "노신선집" 2 민족출판사 1988.3 “황화절의 잡감” 420쪽.

주해 2:   이원규   "김산평전"   2006.   10. 245쪽.

주해 3:   위의 책 251쪽.

주해 4:   “아리랑 로드를 가다” 답사 자료 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