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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의 아리랑 로드를 가다 19]  대동주가大同酒家와 대신회사 옛건물

밤10시40분, 심양에서라면 이맘 때면 내가 잠자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광주에 와서 피곤하지가 않았다. 우리는 호텔 앞에서 박국장이 안내하는 동아대주점 이야기 듣고 박국장 따라 또 밤답사길에 나섰다. 대동주가 앞에 왔다. 박국장은 손전지电棒 들고 건물에 대고 비추면서 안내했다.


대동주가는 1921년 1월 1일 중화민국 남경임시정부 수립 9주년 기념식이 열릴 때 몽양 여운형이 숙박하였다고 한다.


1921년 9월 29일, 예관 신규식 사위 민필호가 외교특사로 손중산을 예방하려고 광주로 왔을 때 대동주가에 숙박하였고 중국 주은래 총리도 대동주가에서 소련, 조선, 윁남 등 국가 지도자들과 연회를 베풀었던 적이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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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주가大同酒家는 대공음식점大公餐厅과 대삼원주가와 함께 "삼대" 대동주가로 불리

웠다. 전신은 광주원주가. 1938년 일본인이 개설하였다가 1943년 적자가 심하여 주인을

바꾸었다. 이로부터 홍콩의 "대동주가"간판을 달았다.


대동주가는2016년 12월 1일 페업후 텐허로 이사갔고 2018년 8월 12일 텐허중심광장에서 재개업을 하였다. 박국장 안내 들으면서 보니 검정색 간판이 있었다.


광주시역사건축

대동주가大同酒家

번    호: CZ-01-0052

확정시간: 2014-01-26

확정단위: 광주시인민정부


대동주가 앞으로 더 가니 대신공사大新公司 옛건물이 있었다. 대신공사는 1923년에 세워진 광주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1919년 8월 유림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들고 심산 김창숙은 상해 임시정부를 찾았으나 임정 특사인 우사 김규식이 일주일 전에 파리로 출발한 뒤었기에 파리행을 포기하고 중국에 남아 유림을 대표하여 독립운동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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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金昌淑(1879-1962),   베이징 무정부주의 독립운

동가이다.   1921년 신채호 등과 독립운동지인 '천고' 발행,

박은식과 사민일보를 발간하였다.


김창숙은 임정의 활동과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통역을 대동하고 손중산을 찾았으나 손중산은 그 당시 북양군벌과 결탁한 각료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상해에 은둔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손중산은 김창숙에게 광동행을 권유하였다고 한다.


1919년 8월 중순, 손중산의 소개로 광주를 방문한 심산 김창숙 환영회가 대신공사에서 열렸고 그때 300여 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즉석에서 한국독립후원회가 조직되었다고 한다.


건물앞에 검정석 대리석에 써 놓은 글자가 있었다.


성외대신공사구지 (城外大新公司旧址)

성외대신공사는 1918년에 세웠고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1938년 전쟁중에 훼손되었다. 1954년 광주시정부에서 투자하여 복구하고 이름을 “남방호텔南方大厦”이라고 달았다.


광주시문화광전신문출판국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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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호텔南方大厦


이 호텔 역시 1999년 7월 27일에 광주시인민정부에서 광주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으며 비문은 1999년 10월 1일에 세웠다. 광주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 한국독립후원회가 조직된 곳, 참말로 유서 깊은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