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여 년 전 미국 여성들은 마라톤 대회도 참가하기 힘들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난다는 터무니없는 속설 때문이었죠. 이에 도전장을 던진 용감한 스무살 대학생이 있었으니, 바로 캐서린 스위처입니다.
1967년 당시 시큐러스대에 다니던 스위처는 마라톤 참가를 위해 교내 크로스컨트리팀의 코치인 아니 브릭스를 찾아갑니다. 브릭스는 “연습 때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걸 보여주면 널 보스턴에 데리고 가겠다”며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위처는 풀코스 42.195㎞보다 훨씬 더 긴 50㎞를 뛰는데 성공해내고, 결국 코치와 함께 보스턴 마라톤에 정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K.V Switzer’라는 중성적인 이름으로 참가 접수를 한 스위처는 참가번호 ‘261번’을 가슴에 달고, 진한 립스틱을 바른 채 마라톤 출발선에 섰습니다. 가발을 쓰는 등 남장을 하고 마라톤에 참여했던 과거 여성들과는 다르게 달릴 때 만큼은 자신이 여성인 걸 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위처의 레이스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타트 총성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회 조직위원장 조크 셈플는 스위처가 달리지 못하도록 소리쳤습니다.
“당장 내 레이스에서 꺼지고 번호표 내놔! (Get the hell out of my race and give me those numbers)”
몸을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옆에서 달리던 코치 아니와 남자친구 존 밀러가 이를 제지해 스위처는 4시간 20분 만에 풀코스를 완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이후, 스위처가 고군분투하면서 달리는 장면이 사진과 영상을 통해 대중들에게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공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요구하는 저항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보스턴마라톤대회는 1972년에 여성의 참가를 공식 허용하게 됩니다. 이후, 완주를 막았던 셈플은 스위처에게 공식 사과를 했고 스위처는 1975년 다시 대회에 도전해 2시간 51분만에 풀코스를 완주하며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재 스위처는 비영리 단체 ‘겁 없는 261(Fearless 261)’을 세워 여성들의 체육활동을 독려하고 있는데요, 보스턴마라톤 조직위도 스위처의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그의 도전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쌓여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6월 최초로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했고, 내년 4월엔 미국 마스터스골프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에 처음으로 여성 골프대회가 열립니다. 지난 2012년 오거스타내셔널 클럽이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사업가 달라 무어를 여성회원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정식 여성대회가 열리는건 1934년에 첫 마스터스대회가 시작된 지 85년만입니다.
지난해 자신이 마라톤에 참가한 지 50주년을 맞은 스위처는 70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가올 50년은 이전보다 더 나을 것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