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일의 전통문화이야기 21] 수레떡의 유래(2)아름다운 꽃처럼 곱게 피여난 시내를 보고난 후부터 바우는 이상한 감정에 포로되여 무슨 일이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밭김을 맬 때면 이랑우에서 시내의 얼굴이 얼른거렸고 나무를 찍으면 도끼날우로 그의 모습이 어려왔다. 자기의 이러한 마음을 누가 들여다보는것 같아서 하루이틀 바재이던 바우는 불쑥 강부자가 지금까지 약속을 어기고있다는 의속이 들어 강부자네 솟을 대문을 들어섰다. “강부자님, 내가 돌아오자 인차 시내를 보내주겠다고 하시더니 왜 한달이 지낟록 지키지 낭ㅎ나이까?” 대청마루에 앉아 바우의 쪽 벌어진 어깨와 무쇠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주먹을 쳐다 보고난 강부자는 엷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어찌 약속을 잊었겠나. 요즘 손님들이 잦아 부엌일거리가 많아서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리게.” 강부자는 머밋머밋하는 바우에게 어서 돌아가기다리라고 말하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제까짓게 시내를 데려가겠다고, 시내를 더 붙잡아 둘 수를 짜내야하는데…” 강부자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두눈을 내리감고 궁리를 짜냈다. 그러던 어느날 곰골마을의 앞산봉수대에서 봉화가 타올랐다. 외적이 쳐들어온다는 봉화가 오르자 국경과 린접한 곰골에는 군사들은 물론 많은 병쟁기와 수레를 보장하라는 군령이 떨어졌다. 군령을 받은 강부자는 한동안 속이 타서 머리를 싸쥐고 끙끙거렸다. 병쟁기와 수레를 보장하려면 야장일과 수레를 만드는데서 능한 재주가 있는 바우가 있어야 고을에다 야장간을 차려놓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계속 병장기와 수레를 제대로 대줄수 있다. 그런데 제 아들의 몫까지 합쳐 수자리를 3년이나 살고 돌아온 바우에게 시내를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있었으니 이제 와서 또 나가라고 할 체면이 서지 않았다. 더구나 바우가 수자리를 나간후 홀로 지내며 병이 든 그의 아버지가 운신도 못하고있는 형편이였다. “바우를 대신할 놈은 없지. 어떻게 한담?” 세모눈을 감고 눈을 굴리던 강부자의 머리속에는 불현듯 군령을 어긴 죄로 칼날우에 목을 대고있는 제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꽉 끼쳐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 잠시후 강부자는 무슨 궁리가 떠올랐던지 새모눈을 번쩍 뜨며 무릎을 탁 쳤다. “아깝기는 하지만 시내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시내를 바우에게 시집을보내주고 그다음…” 강부자는 즉시 안방주인에게 분부하여 이튿날 잔치상을 차리라고 하였다. 바우와 시내는 강부자의 갑작스러운 변덕에 의혹은 있었으나 서로 바라던대로 한집에 모여 살게 되였는지라 하늘나라의 복숭아를 얻은 심정이였다. 이렇게 수레집 며느리가 된 시내는 자기때문에 어머니를 잃고 고생하며살아온 바우와 시아버지에게 지성을 다 마칠 마음뿐이였고 바우와 그의 아버지는 그동안 고생한 시내에게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느라 마음을 쏟았다. 서로 오고가는 사랑속에서의 그들의 행복한 생활은 불과 며칠밖에 못되였다. 강부자가 바우를 불러들였던 것이다. “바우, 자네도 저 앞산에 오른 봉화를 보았지?” “예, 보았소이다.” “앓고있는 아버지와 방금 혼례를 치른 시내를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네만 어찌하겠나. 병장기와 수레동원령이 내렸으니 자네가 아니면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할수 없네. 래일 준비를 갖추고 떠나야 하겠네.” 강부자놈의 웃음기어린 세모눈을 쏘아보는 바우의 가슴에서 밸이 치밀어 올랐다. “네놈이 승냥이욕심에서 선심이 나온다 했더니 그런 심보가 있었구나. 제목이 위태하니까 시내를 내보내주고 나를 끌어낼 생각이였구나… 하지만내가 원래 외적을 치는 싸움에 나가려던 참이니 가타부타 긴말을 할 필요가 없다.” 바우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제 나라 땅에 외적이 쳐들어왔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바우는 이렇게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허나 정작 몸져누운 아버지와 행복에 겨워있는 시내를 보니 차마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느덧 어둠이 깃들고 되창바라지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이까?” 시내가 바우의 행동이 이상했던지 조용히 물었다. “시내, 날이 밝으면 난 전장으로 떠나가야 하오. 아버지와 시내를 생각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제 땅을 지키는 일이여서 싸움에 나갈 결심을 내렸소.” “그래서였구만요. 저야 외적들에게 부모를 잃은 몸인데 어찌 싸움터로 나가는 랑군의 앞길을 마겠소이까. 아버님은 제가 잘 돌보아드리겠으니 마음을 놓으소이다.” “나를 위해 수년세월을 홀로 살아오시며 고생한 아버님인데 잘 돌보아주오.” 그들이 이야기를 속삭이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전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바래주러 곰골마을 남녀로소가 모두 나섰다. “시내, 아버님을 잘 돌봐주오. 그리고 시내도 앓지 말고 잘 있소.” “부디 몸성히 돌아 오시와요.” 바우는 시내의 두손을 꼭 잡아주고 누런황소가 끄는 수레에 올라 채찍을 휘둘렀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며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뽀얀먼지가 일어났다. 덜커덩거리며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시내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바퀴두바퀴 굴러가던 수레는 앞산굽이로 사라졌다… 날과 달이 흘러 한해가 지났으나 싸움은 계속 되였다. 시내는 매일처럼 외적을 쳐물리치고 바우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였으나 좀처럼 돌아올줄 몰랐다. “그사이 아버님이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으니 랑군님이 돌아온다고 해도 무슨 낯으로 만날가?” 바우가 싸움터로 나간후 정성을 다하여 돌봐드린 지성이 은을 내서인지자리를 털고일어나 일손까지 잡으셨던 시아버님이 두달전에 갑자기 세상을떠났던것이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자 시내는 외로움과 고독에 싸여 더욱더 랑군이 그리워졌다. 이웃녀인들이 자주 찾아와 위로도 해주고 일손도 도와주었으나 그는 원래 의지가지할데 없는 홀몸인데다가 요즈음 그 어디에도 터놓을수 없는 일로 벙어리 랭가슴을 앓듯 속만 썩이였다. 시내가 홀로 남게 되자 마치 때가 오기를 기다고있은듯 강부자가 여직껏 속에 품었던 욕망을 이루어보려고 시내의 집에 찾아오군 하였다. 강부자는 시내가 쓴외보듯 외면하자 밤이면 도적 고양이처럼 남모르게 그의 집에 스며들어 갖은 감언리설을 늘여놓으며 치근거렸다. 오늘 저녁도 시내는 이웃집 녀인들과 함께 떡방아를 찧어놓고 어두워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시내, 조용히 들어와, 나야.” 문고리를 당기던 시내는 집안에서 나오는 소리에 놀라 문밖에 굳어졌다. “시내, 바우는 싸움에서 잘못되여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 그러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평생 잘 먹고 잘입게 해주겠어.” 시내는 전장에 나간 바우를 모욕하는 그놈이 증오스러워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래? 어서 들어오게.” 징글스럽게 다가오는 그놈을 보는 시내는 독사가 몸에 감기는것처럼 오싹해서 문을 콱 닫아버리고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시내는 밤이 깊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룰수 없었다. “바우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 라고 하던 강부자의 머리속에서 계속 되살아 올랐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강부자가 나를 속여보자고 한 수단이야. 난 랑군이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리겠어.” 시내는 마치 눈앞에 있는 강부자에게 말하듯 마디마디 씹어놓았다. 홀로 속다짐을 하며 마음을 굳게 먹으니 시내는 랑군이 꼭 살아서 올것만 같은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며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잠시후 눈을 살며시 감은 시내는 꿈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덜커덩, 덜컹, 덜커덩…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련이어 들려온다. 맑고 푸른 하늘에 기러떼가 줄지어 날아간다. 저멀리 우불구불 뻗어간 산굽인돌이에서 황금빛 황소가 네굽을 놓으며 달려온다. 수레우에는 바우가 앉아 한손에 고삐를 잡고 채찍을 휘둘러댄다. 이윽고 삽작문밖에 수레가 멈춰선다. “시내, 수레바퀴가 모자라 아직 싸움을 끝내지 못했소.” 바우는 한마디 말을 던지고 수레에서 내려 마당가에 싸아두었던 바퀴들을 싣더니 다시 수레를 몰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아! 랑군님…” 시내가 소리를 치며 두팔을 벌리고 붙잡으러 하는데 사방에 안개구름이 끼여 보이지 않는다. 황소의 거친 숨소리 끝없이 흘러가는 수레바퀴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아득히 멀어져 간다. “아!” 꿈속에서 헤매던 시내가 놀라서 눈을 뜨니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했고 방안에는 희미한 달빛만이 흘러들고있있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