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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익]  조선전쟁의 나날을 회억하여 (9)

微信图片_20210729145609s.jpg   1957년 청화대학교를 졸업할 때의 저자.



9. 친구의 도움으로 기차에 오르다.


기관차를 발견한 나는 기관차가 나타난 방향을 따라 걸었고, 그곳에서 철길을 찾았다.


그리고, 철길을 따라 걸었고, 끝내는 역전에 닿았다.


개천介川이라는 역이었다. 역전은 적막해 보였고 주변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나는 역전으로 직접 들어갔고 안에는 붉은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나는 대학교시절 민주청년동맹회 탁 위원장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지금 기차역의 조선측 관리관으로 있었다.


부상당한 나를 본 그는 “포병군관학교 간다해서 환송한지 반 년밖에 안되는데 왜 부상병이 되었나!”고 놀라워했다.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인츰 이곳을 지나는 중국인민지원군 부상병을 운송하는전용렬차가 있는데 나는 열차를 정지시킬 권한은 없지만 그래도   ……


그는 해석하면서 플랫폼에 올라섰다.


원래는 이 역전에서 정지하지 않는 열차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탁 위원장은 열차를 향하여 깃대를 들었다. 열차가 정지하라는 신호였다.


열차가 멈추자 탁 위원장은 나를 가리키며 “빨리 차에 오르라구” 재촉했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리였다. 나를 위해서 자신의 앞날을 훼손할 수도 있는   모험을 감수하면서 열차를 세웠던 것이다.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열차에 올랐다.   내가 열차에 오른 것을 보고 탁 위원장은 기발을 흔들어 열차 통과를 지휘했다.


열차는 서서히 움직였고 개천역을 지나갔다. 나는 플랫폼에 서있는 탁 위원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감격을 금할 수 없었고, 동시에 그의 대담한 규칙위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근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기차에 올랐으나 문어구에서 제지당했고 지휘관이 있는 객실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지휘관은 상황을 물은 후 내가 지원군이 아니기에 이 열차를 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전용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자 나는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차한 기차역은 전천前川역이었다. 중조 국경인 압록강과 약 150여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아군의 통제구역이였다.


20여일간 산을 넘고 영을 지나서 나는 적군의 방어선을 끝내는 뚫고 아군의 전지 전천에 왔다.


나는 조선인민군 전천야전병원으로 호송 되었고 후에는 본 야전병원의 시중时中분원으로 다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9)